말레이시아 정부가 지난 1990년대에 발생한 대형 외환 스캔들에 대해 20여년 만에 재조사를 벌인다.
19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술탄 무하맛 5세 말레이시아 국왕은 전날 말레이시아 중앙은행(BNM)을 둘러싼 외환 스캔들에 대한 왕립 조사위원회(RCI) 설립을 승인했다. 총리실 비서실장을 지냈던 탄 스리 모드 사이덱 하산이 위원회를 이끌며 고등법원 판사와 재무부 실무진 등이 조사위원으로 참가한다.
이들이 조사하는 BNM 외환 스캔들은 1990년대 초 BNM이 투기 외환거래에 뛰어들었다가 천문학적 손실을 본 사건이다. 당시 BNM은 링깃화 안정을 내걸고 공격적인 외환거래를 추진했으며 이 과정에서 중앙은행의 외환시장에 대한 위험노출액(익스포저)이 보유 외환의 5배가 넘는 2,700억링깃에 달했다. 이후 BNM은 이 과정에서 약 90억링깃(2조3,500억원)의 손실을 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올 초 역대 최대 규모의 스캔들로 불리는 이 사건을 재조사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말레이시아 정부는 실제 손실규모가 440억링깃에 달할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BNM 스캔들 다시 꺼낸 이유
야권 유력 지도자 92세 마하티르
내년 총선 차기 총리로 떠오르자
前 총리 시절 스캔들로 견제 나서
말레이 정부가 20여년 전의 외환 스캔들에 대해 다시 칼을 뽑아든 것은 92세라는 고령에 정계에 복귀한 마하티르 모하맛(사진) 전 총리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1981~2003년까지 장기 집권한 마하티르 전 총리는 한때 집권 여당연합 국민전선(BN)의 수장이자 나집 라작 현 총리의 후견인이었지만 나집 총리가 국영투자기업 1MDB에서 나랏돈 수백억링깃을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된 후 야권의 유력한 지도자로 변신해 나집 총리 퇴진운동을 벌였다. 그는 최근 동성애 혐의로 투옥 중인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를 대신해 야권연합 희망연대(PH) 의장으로 선출되는 등 차기 총리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
현지 전문가들은 말레이시아 정부 여당이 내년 중순으로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마하티르 전 총리 집권 시절 발생한 금융 스캔들을 파헤치는 것은 나집 총리의 비리 의혹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분산시키고 마하티르 전 총리를 견제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집권여당인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의 전 고위당직자였던 타우픽 이스마일은 “마하티르 전 총리도 전임자들의 공격을 받았을 당시 그들의 과거를 들춰내 반격했다”며 “나집 총리도 똑같이 행동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