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경제부처의 A국장은 올해 1급 승진을 바라보고 있다. 일찌감치 청와대에서 행정관으로 파견 근무를 했고 한 번도 하기 힘들다는 정책과장을 두 번이나 했다. 엘리트 코스를 차근차근 밟은 셈이다. 그런데 전 정부 시절 맡은 정책이 지금은 집권 여당인 당시 야당의 반발을 산 것이 찜찜한 모양이다. 그는 맡은 과제가 과거 정부의 주요 시책이다 보니 밤낮으로 국회를 뛰어다녔다. 야당 의원 보좌관으로부터 “뭣 하러 그렇게 하냐”고 핀잔도 들었다. 정권이 바뀐 지금 시점에서 보면 그는 하루아침에 적폐 정책의 종범쯤 된다. 장차관 인사가 마무리돼 곧 닥칠 인사 태풍을 앞둔 A국장은 “대충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차관을 거쳐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달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묘한 질문을 던졌다. 추 의원은 “4월까지만 해도 추경이 필요 없다더니 새 대통령이 취임하자 추경안을 제출했는데 영혼 없는 기재부가 아닌가 걱정된다”고 따져 물은 것이다. 이에 대해 김 후보자는 “여러 차례 공무원의 영혼을 얘기했는데 그래도 이 나라를 지탱하는 것이 의원님의 후배 공무원 아니냐”며 이해를 구하는 것으로 답변을 갈음했다. 그나마 추 의원과 함께 경제관료로 한솥밥을 먹은 덕에 영혼 논쟁은 이 정도에 그쳤다.
기재부의 추경 편성이나 A국장의 처지를 영혼이 있네 없네 재단하는 것은 과하다. 외환위기 이후 새 정부 첫해의 추경 편성은 예외가 없었다. 물론 이것도 적폐라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공직사회의 행태와 생리를 모를 턱이 없는 추 의원의 질문은 그래서 짓궂은 느낌도 든다. 과거 정부의 정책이 하루아침에 뚝딱 떨어진 것이 아닐진대 국정농단 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위법하고 치명적인 결함이 아니라면 전 정권의 부역자로 낙인찍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5년마다 반복되는 공무원 영혼 논란은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의 문제가 아니다. 공직자들이 정권의 코드를 맞추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은 경험칙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 나쁜 사람’이라고 내뱉은 이 말 한마디는 관료의 생존법칙을 새삼 재확인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영혼을 지킨 공직자가 없지는 않았다. 반대로 바람이 불지 않아도 알아서 드러누운 공직자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김 부총리의 답변처럼 “그래도 나라를 지탱한다”는 말을 더 믿고 싶다.
어제 발표된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100대 과제는 숱한 정책이 180도로 뒤바뀌고 말았다. 졸지에 적폐 정책으로 낙인찍힌 것이 수두룩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지만 뭐가 영혼 있는 정책인지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원전 수출에 열 올린 것이 엊그제인데 원전 공사가 날치기 결정으로 중단되지를 않나, 성과연봉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공공기관을 다 없앨 것 같던 기세는 하루아침에 적폐 청산의 대상이 돼버렸다. 노동과 관련한 양대 지침도 시행 1년6개월 만에 없던 일이 될 처지다. 이명박 정부 때는 문제 없다던 4대강 사업은 전 정부에서 대운하를 염두에 둔 총체적 부실로 낙인찍은 것도 모자라 감사원이 네 번째 감사에 착수했다. 내년 중 4대강을 가로막은 보의 철거 여부 결정을 한들 누가 수긍을 할지 모르겠다.
일관성을 잃어버린 정책은 신뢰성도 동시에 추락한다. 문재인 정부의 ‘큰 정부론’이 신뢰성 난제에 봉착하면 최악의 조합이다. 공무원의 영혼은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은 정권의 진보·보수 문제가 아니다. 정치권력의 관료 줄 세우기가 되풀이되는 사이 그 틈을 비집고 보신주의의 싹은 커질 대로 커졌다. 밥줄이 달렸는데 누가 정책의 현실성과 부작용을 입에 올리겠는가. 새 정부의 정책이 또 언제 적폐 청산의 도마에 오를지 아무도 모른다. 공무원의 영혼과 적폐를 함부로 갖다 붙이지 마시라. /chan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