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 짜리’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 1심 선고가 내달 17일로 예정된 가운데 ‘신의 성실의 원칙(이하 신의칙)’이 막판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법조계에서는 기아차의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면서도 산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워낙 큰 만큼 사법부가 신의칙을 적용할 가능성도 있어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재판장 권혁중)는 20일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 최종변론기일을 갖고 사측과 노조측 변호인단으로부터 최종변론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기아차 측은 “과거 지급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이 맞다고 하더라도 신의칙 적용 문제는 사회적 파장이나 자동차 산업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검토해달라”고 밝혔다. 이어 “기아차의 어려움은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과 미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면서 “최근에도 노사간 통상임금 합의가 되지 않아 추가 소송이 계속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사안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다”면서 “다음 달 선고때까지 충분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기아차 생산직 근로자 2만7,458명은 2011년 연 750%에 이르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고 연장 근로 등 각종 수당을 다시 계산해 지급하라며 사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노조가 승소할 경우 회사측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최대 3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와관련,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상여금이 일정 간격(정기성)으로 모든 근로자에게 고루 지급(일률성)되고 추가 조건 없이 하루만 일해도 지급(고정성)됐다면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고정성이 인정되지 않아 1·2심에서 노조가 패소했으나 기아차의 경우 노조가 다소 유리하다는 관측이다. 현대차는 상여금 시행세칙에 ‘두 달 동안 15일 미만을 근무한 자에겐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어 고정성이 없다고 봤지만 기아차는 이 같은 시행세칙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기아차는 신의칙에 기대를 걸고 있다. 2013년 대법원은 ‘노동자의 통상임금 확대 청구로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위기가 발생한다면 신의칙에 위반되기 때문에 미지급된 통상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사드 배치 여파로 중국 판매가 반토막나는 등 실적이 부진한 상황에서 수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부담할 경우 당장 적자로 전환하는 등 경영 위기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판결은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등 다른 업체들의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재계에서는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되는 판결이 나올 경우 2016년부터 5년 동안 사회적 비용이 약 33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또 과거 지급된 상여금이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각종 수당 등을 지급하고 성과급 등으로 충분히 보상했는데도 노조가 상여금 제도는 그대로 유지한 채 단체협약 기준에 의한 미지급 수당만 추가로 지급하라는 것은 상호 간 신뢰를 깨는 행위라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 지침에 따라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 산정에서 제외한 것은 기아차뿐 아니라 국내 기업들의 임금협상에서 일반적인 관행”이라면서 “지난 수십년 간 임금협상을 통해 이어져온 노사 신의를 고려한 판결을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