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9시40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모두발언 이후 비공개로 전환하기 위해 장내를 정리하려던 순간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국정과제 수행, 지속 가능한 재정을 위해 소득·법인세 등의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게 골자였다. 이에 김 경제부총리는 즉석토론을 제안했다. 17명의 국무위원 중 4명(김 장관 포함)이 증세 필요성에 공감했고 다른 2명은 국민적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며 제한적으로 동의했다.
국무위원·정권실세발(發) 증세론에 불이 붙고 있다. 지난 19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5년간 178조원 규모의 정책을 달성하겠다고 하면서도 자연세수 증감분을 60조원 넘게 잡고 세법 개정에 의한 것은 공약집(31조5,000억원)에서 대폭 후퇴한 11조4,000억원만 책정했다. 그러자 정권 내부에서조차 현실성이 지나치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 장관은 공개적으로 “증세 없이 재원조달을 한다고 하지 말고 솔직해지자”며 증세론에 불을 지폈다. 김 장관은 “대통령이 후보 때 소득세율 최고구간을 조절하겠다고 했고 법인세율도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는데 (정부가 준비 중인 안이) 너무 약한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더 나은 복지를 하려면 형편이 되는 쪽에서 소득세를 더 부담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정직하게 해야 한다”며 “없는 지하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 법인세 인상도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개발언이 끝난 뒤 김 부총리는 “법인·소득세 문제는 굉장히 민감한 이야기”라며 “국가재정전략회의 등에서 같이 이야기해보자”고 서둘러 마무리했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도 증세론에 힘을 보탰다. 그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선진국에 비해 경유가 싼 것은 사실이다. 미세먼지를 증가시키는 원인이라는 점도 밝혀진 이상 경유에 대해 우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장기적으로 경유세를 인상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당정청은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다. 문 대통령은 “재정의 역할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할 때”라면서 “작은 정부가 좋다는 맹목적인 믿음이 있었는데 직면한 저성장·양극화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재정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규·박형윤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