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① 5년내내 경기 좋아 年12조씩 세수 더 걷는다? "낙관 넘어선 자만"

'세수 자연증가분 60조' 재원의 3가지 허상

② 대규모 파산 등 돌발상황 땐 대응수단 제한

③ 증세 없는 복지,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일뿐

2115A03 문재인 정부 공약 가계부




2115A03 수입 추이


문재인 정부가 지난 19일 밝힌 ‘증세 없는 공약 가계부’를 두고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가계부는 국정과제 이행에 필요한 178조원을 어떻게 충당할지에 대한 계획을 담았다. 계획의 핵심은 증세는 사실상 안 하겠다는 것이다. 세법 개정을 통한 세수 확충 규모가 공약집 31조5,000억원에서 11조4,0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고 그마저도 비과세·감면 정비 등을 위주로 하겠다고 했다.

세입 확충을 줄인 근거는 자연적으로 증가하는 세수가 많다는 데 있었다. 실제 이번 재원 계획에는 공약집에 없던 ‘세수 자연증가분’이 60조5,000억원이나 새로 배정됐다.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의 3분의1은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채워진다는 얘기다. 최근 경제 상황이 좋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는 것인데 그런 점을 감안해도 다소 허황되고 부실하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①5년 내내 경제 좋을 거다? “낙관 넘어선 자만”=재원 계획을 만드는 데 참여한 윤호중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기획분과위원장(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세수 증가분 60조5,000억원을 배정한 데 대해 “지난해 세수가 예상치보다도 10조원 더 들어왔고 앞으로 견고한 경제 성장이 예상돼 2009년 금융위기와 같은 사태가 없는 한 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구정모 한국경제학회장(강원대 교수)은 “5년간 12조원 넘게 세수가 들어오려면 경제성장률이 최소 3%대를 꾸준히 기록해야 한다는 것인데 지금 우리 경제 상황이 그렇게 녹록하냐”면서 “최근의 경기는 글로벌 경제 회복세와 반도체 수출 증가 등에 기댄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안정적인 성장을 장담할 만큼 경제의 체질 개선이 이뤄진 것도 아니고 대내외적으로 어떤 위험요소가 터질지 모르는 상태인데 60조원 세수 증가 목표는 너무 낙관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세수 수입은 경제성장률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도 아니고 5년은커녕 1년 단위로도 전망이 틀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실제 한국경제는 2013년에 2.9%의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당시 세수는 전년보다 약 2조원이 줄었다. 예상치보다 8조5,000억원이나 밑돈 규모다. 경제가 3.3% 성장한 2014년에도 세수 증가는 3조6,000억원에 그쳤다. 매년 12조원 세수 증가 목표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②5년 내 공약사업만?…대규모 파산 등 돌발상황 발생 땐 대응수단 제한=세수 전망을 낙관적으로 하더라도 이를 재원 계획에 넣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며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도 매년 5년 단위의 세수 전망을 하지만 1년차 전망치만 내년 예산을 짜는 데 반영할 뿐 2~5년차 전망은 ‘참고용’으로만 쓴다”며 “2~5년차 전망은 그만큼 세금이 들어온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국정기획위에서 5년치 전망을 재원 계획에 넣었다면 전망치를 참고용을 넘어 일종의 예산 편성 근거로 쓴 것이어서 위험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이런 식으로 5년치 예산을 한번에 편성하는 경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 중에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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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조원이 차질 없이 들어온다고 해도 위험은 있다. 박형수 조세재정연구원장은 “초과 세수는 모두 공약사업에 집어넣겠다는 뜻인데 국정 운영 과정에서 대규모 자연재해나 파산 사태 등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느냐”면서 “그런 일에 투입해야 할 재원은 어디서 조달하느냐”고 지적했다. 일례로 지난 정부 때 대우조선해양 위기로 7조원이 넘는 재정이 투입된 바 있다. 이 역시 예측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최근에는 최저임금 인상 지원에 3조원을 쓰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③증세 없는 복지?…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상=국정기획위가 재원 계획에 약 60조원의 세수 자연증가분을 넣은 것은 증세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해석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증세론을 꺼냈다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깔려 있다. 하지만 증세 없는 복지는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증세 없는 복지 확대의 한계는 이미 박근혜 정부 때 본 적이 있다. 박근혜 정부 역시 공약 가계부에서 증세는 최소화하고 비과세·감면 축소, 재정지출 절감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약속은 이행되지 못했다. 그 결과 국가부채만 크게 늘었는데 박근혜 정부 4년간 재정적자는 총 111조3,000억원으로 이명박 정부 5년간 적자액(98조8,000억원)보다 많았다.

문재인 정부 역시 “내년부터는 사회적 논의를 거쳐 증세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상태이지만 진정성을 의심하는 눈초리가 많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책임 있는 정부라면 조세부담률이 현저히 낮은 우리나라 현실을 얘기하고 집권 1년차에 명확한 증세 로드맵을 제시해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게 아니냐”라며 “지금의 태도는 사실상 증세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세종=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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