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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포크레인’ 엄태웅의 응어리 연기, 이데올로기의 폐해를 만났을 때

“그 날, 왜 그곳에 우리를 보냈습니까?”

한 남자가 몇 번이고 되묻는다. 군 동기부터 상사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20여 년 전의 진실을 좇는다. 유일한 이동수단 ‘포크레인’을 타고.




/사진=김기덕필름 제공/사진=김기덕필름 제공




영화 ‘포크레인’(감독 이주형)이 20일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포크레인’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 진압에 동원됐던 공수부대원 김강일(엄태웅)이 퇴역 후 포크레인 운전사로 살아가던 중,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20여 년 전 묻어두었던 불편한 진실을 좇아가는 진실 추적 드라마.

이 영화, 플롯은 단조롭지만 뇌리에 깊이 박힌다. 김기덕 감독의 7번째 각본·제작작이자 김기덕 사단의 이주형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붉은가족’ 이후 두 번째 협업이다. 김기덕 감독은 이번에도 편협한 이데올로기에 따른 정신적 외상자들의 뼈아픈 면면을 살폈다. 이주형 감독은 이 과정을 찬찬히 풀어나갔다.

‘포크레인’은 김강일이 진실에 대한 답을 얻고자 여러 인물을 대면하고 여정을 이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일종의 로드무비를 연상케 한다. 굴삭 작업을 하던 중 발견한 백골이 김강일에게는 ‘진실의 방아쇠’를 당기게끔 한다. 과거 군 동료들이 현재까지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온전치 못한 삶을 살자 김강일은 적극적인 추궁에 나선다.

“그날, 왜 그곳에 우릴 보냈습니까?” 이 한 문장을 던지자 과거 군 상사들은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20년 전 일을 이제 와서 들추는 저의가 무엇인지 영 불편해한다.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며 끝까지 진실을 외면하고 묻어두려 하지만, 그럴수록 김강일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


인물들이 ‘반 미쳐있는’ 지경에 이른 탓은, 결국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로 사건이 귀결된다. 시위 진압을 한 ‘그 날’, 인간이 인간을 폭력으로 심판하는 일이 벌어졌다. 철저한 상명하복 체계를 따르는 군 문화에서 ‘한 인물’의 광기가 처참한 파장을 낳았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핑계를 가지고 스스로 면죄부를 주지만, 상사들 역시 ‘그 날’의 죄책감을 결코 떨쳐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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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기덕필름 제공/사진=김기덕필름 제공


영화 속 포크레인이 주는 메타포는 확실하다. 힘 잃은 엔진으로 덜덜거리며 거북이걸음으로 달리는 포크레인은 김강일의 심경처럼 애처롭기 그지없다. 낡고 빛바랜 차체는 그만큼 고통으로 닳은 인물을 대변한다. 굴착에 사용되는 버켓은 과거를 파헤치겠다는 의지다.

이 영화는 엄태웅의 복귀작으로도 많은 관심을 모은다. 지난해 7월 한 마사지 업소의 여종업원에게 성폭행 혐의로 피소된 후 성폭행 혐의는 벗었지만, 같은 해 11월 성매매 혐의로 벌금 100만 원의 약식 기소 처분을 받은 바 있다. 그리고 자숙기간을 가졌던 엄태웅은 이주형 감독의 끊임없는 출연 제의로 연기를 결심했다.

이주형 감독은 “캐스팅 과정이 가장 힘들었다. 포크레인 좌석에 앉는 모든 배우를 생각해봤는데, 엄태웅 만큼 어울리는 배우가 없겠더라. 깊숙한 곳에서 아픔이 우러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엄태웅도 출연에 고민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그 판단을 입증하듯 영화 속 엄태웅은 냉철한 캐릭터 해석으로 줄곧 분노에 차있는 주인공 김강일의 묵직한 연민을 전한다. 특유의 응어리지고 악에 받친 연기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포크레인’이 엄태웅의 복귀를 가속화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불투명해 보인다. 아직 많은 비난의 여론을 감내해야 할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스스로도 인지하는지, 이날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는 엄태웅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이주형 감독만이 영화와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어쨌든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 진압군이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처지는 되짚어볼 만하다. 그리고 또 다시는 ‘최고 가해자’를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뼈저린 공감이 이 시기에도 얼마든지 필요해 보인다. 7월 27일 개봉.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

한해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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