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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기획:흥행공식①] ‘실미도’부터 ‘부산행’까지..14년의 ‘민족주의’ 천만史





흔히들 대한민국 영화산업의 비약적인 성장으로 ‘천만 돌파작 증가’를 든다. 질 좋은 콘텐츠, 관람객수의 절대치 증가에 따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화의 민족’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국민 1인당 평균 영화 관람횟수는 4.2회로, 아이슬란드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을 기록했다.


천만 기록은 수치상으로만 박수 받는 정도를 넘어 그 해 ‘최고의 작품’으로 평생 기억된다. 영화제 수상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의미 있는 가치가 되기도 한다. 한 작품을 보더라도 각자의 감상이 다르겠지만, 일단 현재는 우수 성적표를 받아든 작품에 대해 ‘절대 기준’을 통과한 ‘좋은 작품’이라고 기억한다. 그 역사는 2000년대부터다.

대한민국에서는 현재까지 총 14편의 국내 천만 영화가 탄생했다. 그 시작은 2003년 ‘실미도’부터다. 그해 12월 24일 개봉한 ‘실미도’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투캅스’ ‘공공의 적’을 연출한 강우석 감독의 작품이자 설경구, 안성기, 허준호, 정재영 등 실력파 배우들의 대거 출연으로 믿고 볼 만한 작품으로 기대됐다.

특히 우리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면서도 역사 속에서 지워져야 했던 ‘실미도 사건’을 재조명해 ‘실미도 684부대’의 1968년 창설부터 해체까지의 과정을 뼈아프게 담았다. 이는 국내 관객들의 애국심을 뜨겁게 달구며 누적관객수 1108만 1000명을 기록했다. 이로써 ‘실미도’는 최초의 천만 관객 돌파 ‘신화’를 낳으며 ‘천만 영화’라는 타이틀을 창조해냈다.



국내 두 번째 천만 영화는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가 누적관객수 1174만 6135명을 기록하며 차지했다. ‘태극기 휘날리며’ 역시 ‘실미도’에 이어 분단과 군대에 대한 민족 정서를 환기시키며 1950년 6.25 당시 두 형제의 가슴 아픈 가족사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특히 장동건과 원빈이 형제로 등장하는 것부터 화려한 비주얼 케미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세 번째로는 1051만 3715명을 모은 ‘왕의 남자’다. 사극으로는 첫 번째다. ‘사극 거장’ 이준익 감독 연출에 정진영, 이준기, 강성연, 유해진 등이 출연했다. 조선 최초의 궁중광대극을 소재로 아름다운 욕망과 화려한 비극을 다룬 것이 특징이다. 연산을 가지고 노는 광대들의 사이다 풍자 한 방이 매력 지점으로 통했으며, 이준기의 매혹적인 데뷔도 잊지 못할 충격을 안겼다.

봉준호 감독의 첫 번째 천만 돌파작 ‘괴물’도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2006년, 1091만 7221명을 모았다. 무려 모험, 액션, 스릴러, 코미디, 드라마, SF, 판타지 장르가 혼재된 작품이다. 송강호, 변희봉, 박해일, 배두나, 고아성이 가족 케미를 이룬 이 영화는 한강에 괴물이 나타나 시민들을 습격한다는 상상력으로 이야기가 전개됐다. SF스릴러 배경에 가족의 화합으로 따뜻함을 녹여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았다.

잠시 주춤하다가 2009년 ‘해운대’는 재난영화로서 천만 기록을 남겼다. 누적관객수는 1132만 4545명이다. 대마도와 해운대를 둘러싼 쓰나미 경보에도 국가 재난 방재청은 쓰나미가 한반도를 덮칠 일은 없다고 단언하고 그렇게 무방비 상태에서 해운대가 재난 상황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해운대’ 이후로 한반도에도 얼마든지 재난상황이 닥칠 수 있음을 자각하게 됐다. 설경구, 하지원, 박중훈, 엄정화, 이민기, 강예원 등이 소시민의 각양각색 사연을 전하며 관객들의 가슴을 울렸다.


2012년은 처음으로 ‘쌍천만’이 탄생한 해다. 7월에는 ‘도둑들’, 9월에는 ‘광해’가 각각 천만을 돌파한 것.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은 김윤석, 김혜수, 이정재, 전지현, 김해숙, 오달수, 김수현 등 초호화 배우들의 ‘멀티 캐스팅’ 전략으로 힘을 쏟았다. 내용 또한 10인의 도둑들이 역할을 분배하는 촘촘한 짜임새로 이야기를 펼쳐 한국형 케이퍼무비의 모범적인 사례를 남겼다. 1298만 3841명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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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또 한 명의 광해를 이병헌이 1인 2역으로 열연해 익숙한 소재임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병헌의 광기어린 연기 변신이 큰 호평을 받았으며, 류승룡, 한효주, 심은경도 탄탄한 몫을 해 완성도를 높였다. 누적관객수 1232만 3555명이다.



2013년 역시 연초 ‘7번방의 선물’과 연말 ‘변호인’으로 쌍천만을 연달아 기록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수감되는 용구(류승룡)와 7번방 교도소 친구들이 용구의 딸 예승(갈소원)을 교도소로 초대하기 위해 벌이는 좌충우돌 이야기를 담은 ‘7번방의 선물’은 교도소라는 삭막하고 폭력적인 공간에서 따스한 부정이 생기는 반전의 감동으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건드렸다. 부족한 개연성과 다소 억지스런 감동을 유발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많은 대중은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었다. 1281만 1213명을 모았다.

1137만 4861명을 기록한 ‘변호인’은 특정 정치인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 강렬한 인상을 심었다. 훗날 반대 정권으로부터 주연 송강호를 문화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르도록 만든 작품이자, 용기 있는 시도로 평가된 영화다. 1980년대 초 부산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과거의 노무현을 그린 이 영화는 ‘정의’에 대한 근본적인 메시지를 던져 관객들의 심장을 뜨겁게 만들었다.

천만 작품이 가장 많이 탄생한 시기는 2014년이다. 4편이나 탄생한 이례적인 해다. 외화 ‘겨울왕국’ ‘인터스텔라’를 포함해 국내 영화 ‘명량’ ‘국제시장’가 해당된다. ‘명량’과 ‘국제시장’은 각각 여름과 겨울 방학 성수기에 전 세대를 겨냥한 소재와 이야기로 흥행에 성공했다. ‘명량’에서는 최민식이 이순신 역을 맡아 1597년 임진왜란 6년, 국가존망의 위기에서 조선을 구하는 위대한 지도자의 모범을 재조명했다. 12척의 조선배로 330척의 왜군을 물리치는 극적인 과정이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도 했다.

‘국제시장’ 역시 과거를 초점으로 했다.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로 현재까지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우리네 아버지의 삶을 가슴 뭉클하게 다뤘다. 이는 기성세대들의 시대적 아픔을 환기시키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명량’은 1761만 5039명, ‘국제시장’은 1426만 1582명까지 동원하며 각각 역대 흥행순위 1, 2위에 등극했다.

역대 흥행순위 3위작으로는 2015년 개봉한 ‘베테랑’이 있다. 류승완 감독, 황정민, 유아인 등이 함께한 ‘베테랑’은 안하무인하고 유아독존인 재벌 3세를 향해 통쾌한 사이다 한 방을 날려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가운데 유아인의 ‘어이가 없네’ 등 주옥같은 명대사들이 화제를 낳았다.

‘암살’도 ‘베테랑’과 비슷한 시기 ‘쌍끌이’로 1270만 5700명을 기록하며 천만작으로 남았다. 최동훈 감독 지휘 하에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오달수, 조진웅 등 화려한 멀티캐스팅이 돋보인 ‘암살’은 일제 강점기 친일파 암살작전으로 의인들의 활약상을 그리며 ‘베테랑’과는 또 다른 쾌감을 선사했다. 특히 전지현은 명사수 안옥윤으로 분해 당대의 강인한 여성상을 보여줬다. 오달수는 ‘암살’과 ‘베테랑’에 모두 출연한 조연이자, 역대 7편의 천만작 등장 배우로서 ‘천만 요정’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부산행’이 1156만 5827명을 끌어 모아 그 해 유일한 천만 돌파작으로 언급됐다.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사이비’의 연상호 감독이 만든 첫 실사작임에도 불구, 전대미문의 바이러스 확산 재난 상황 속 열차에 탄 사람들의 사투를 극적으로 보여줘 신선한 충격을 줬다. 공유, 정유미, 마동석, 김수안, 김의성, 최우식, 안소희 등이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주며 제 69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의 쾌거까지 거뒀다.

우리나라에선 2003년 ‘실미도’가 1천만 관객 시대를 연 이래 지금까지 총 18편의 ‘천만 영화’가 나왔다. 이 중 14편이 한국 영화다. 2007, 2008, 2010, 2011년을 제외하곤 14년간 연 평균 1편 이상은 탄생시켰다. 그리고 2017년 상반기까지는 천만 영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2011년 이후로 6년만의 無천만해가 될지, 아니면 올해 기대작인 ‘택시운전사’ ‘군함도’ ‘신과함께’ ‘남한산성’에서 동시에 흥행 축포가 터질지 이목이 집중되는 시점이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

한해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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