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하담을 꼭 만나고 싶었어요. ‘하담’이란 캐릭터 자체가 저에겐 선물이었다고 생각해요. 꽃 3부작 속 하담이로 인해 제가 너무 많은 걸 받은 기분이에요.”
지난 6일 개봉한 ‘재꽃’은 ‘들꽃’, ‘스틸 플라워’를 잇는 박석영 감독의 ‘꽃 시리즈’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들꽃’을 통해 생존을, ‘스틸 플라워’에서 자립하는 이십 대 소녀의 이야기를 담았던 박석영 감독은 ‘재꽃’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우리에게 따스한 위로와 연대의 손길을 건넨다.
‘꽃3부작’과 함께 정하담은 성장하고 또 성장했다. 그도 그럴것이 정하담의 데뷔작은 박석영 감독의 ‘들꽃’이었다. 그는 데뷔작을 통해 주목할 만한 신예 배우의 탄생을 알린 뒤, 영화 ‘검은 사제들’의 무당을 거쳐 꽃3부작 두 번째 시리즈 영화 ‘스틸 플라워’로 다시 한 번 관객에게 말을 걸었다.
그 사이 정하담은 제37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노미네이트, 제36회 한국영화평론가폅회상 신인여우상, 제4회 들꽃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을 이어가며 한국예술영화의 대표 얼굴로 성장했다.
“‘꽃3부작을 마친 소감을 많이들 물어보세요. 그 때마다 하는 말이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해요. ‘꽃 시리즈’ 속 하담이도 저도 성장했어요. 3부작 영화를 3년에 걸쳐서 작업을 하긴 했어요. 음. 인생에서 소중하고 중요한 시점에서 마무리가 된 것 같아요. 각별한 느낌을 준 영화입니다.
‘재꽃’의 하담은 꽤 괜찮은 사람이에요. 저보다 훨씬 더 품이 큰 사람, 나은 사람이라고 할까요. 내가 추구하는 이상향이 담긴 사람이어서 그런가 봐요. 진짜 그 캐릭터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단단하면서도 여리고 부드러운 부분이 많아요. 저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란 생각도 함께요.“
‘들꽃’ ‘스틸플라워’ 속 상처투성이 하담은 ‘재꽃’에 와서 보다 온전히 상처를 받아들이게 된다. 정하담은 “하담이 ‘재꽃’에서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떨쳐버리기 보다는 스며들 듯 받아들이는 과정이 좋았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3부작 중 ‘재꽃’이 제일 좋아요. 하담의 상처가 삶 속으로 스며들었다고 느껴졌거든요. 하담이의 섬세하고 사려깊은 모습이 담겨 있어서 ‘재꽃’이 더 마음이 갔어요. 이 영화를 하면서 어려웠지만 고통 같은 것들이 스며드는 느낌이 좋았어요.”
영화 ‘재꽃’에서 하담(정하담)은 시골 마을에 정착한 후, 또 다른 소녀 해별(장해금)을 만나게 된다. 그를 발견한 하담은 문득 해별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바라본다. 어찌보면 하담의 이야기에서 그녀를 닮은 해별의 이야기로 다음 시리즈가 이어질 것 같은 여운도 남긴다.
“해별이에게 다음 이야기를 넘겨준 건지 여부는 자세히 모르겠어요. 그 부분은 감독님이 더 잘 알고 계실 듯 해요. 사실 영화적으로 봤을 때 해별과 하담이 같은 사람일 수 있어요. 같은 맥락안에 넣으신 것 같아요. 자기에게 상처였던 기억을 끄집어내게 하거든요. 지금 와서 그랬다면 과거의 하담을 안아줄텐데란 마음이 들어요. 누구나 상처란 게 있잖아요. 그런 순간을 돌아보면서 지금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당하지 않았을텐데, 혼자 울고 있지 않았을텐데란 마음이랄까. 그렇게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을 알 것 같아요. ”
‘재꽃’은 충청남도 당진을 배경으로 여타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시골 풍경으로 눈길을 끈다. 싱그러운 여름 옥수수 밭을 거니는 하담과 해별의 모습, 그리고 여름날 드넓은 논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광활한 풍경은 보는 순간 치유가 되는 마법 같은 공간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초등학교는 서울에서, 중학교는 전라남도 남원, 고등학교는 전라북도 무주에서 생활한 정하담은 ‘재꽃’ 현장에서 문득 문득 논밭을 보고 있다보면 지금부터 더 많이 웃음보가 터졌던 고등학교 때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문학소녀였던 그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간직한 쾌활, 명랑한 10대였다고 한다.
“시나 수필도 안 읽고 오로지 소설책만 좋아했어요. 특히 천명관씨 소설을 좋아했어요. 이야기를 듣고 보고 상상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늘 소설가만 꿈꾸다 고등학교 때 연극부를 하면서 흥미를 느꼈어요. 나랑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느 순간부터 영화를 계속 보고, 또 소설책보단 시나리오를 보다보니까 소설이 안 읽혀지는 것 같아요. 저에게 시나리오가 더 익숙하게 자리 잡은 기분이에요. 소설을 읽는 법을 까먹은 것 같아요. 예전엔 완전히 소설에 빠져서 그 순간엔 다른 것을 하지 못할 지경이었는데, 요즘은 소설책을 읽는 방법을 까먹은 기분이에요.“
충무로 기대주로 떠오른 3년차 신인배우 정하담은 ‘배우 지망생’에서 ‘배우’로 한 걸음 다가가고 있다. 촬영장에서 가장 에너지가 살아나고, 그리스 비극 연극에 도전하고픈 꿈도 간직하고 있다. 영화 ‘검은 사제들’을 함께 찍은 연극 배우 이남희 선배의 연극도 챙겨보고, ‘재꽃’을 함께 찍은 연극 배우 정은경 선배의 연극도 찾아가서 본다고 했다. 최근 ‘꿈의 제인’으로 좋은 평을 받은 배우 겸 감독 구교환씨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 소망도 어필했다.
“배우 3년차이면 신인은 신인인데, 어설플 수 없는 사람이란 기분이 들어요.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려고 하는 느낌이랄까. 좀 더 잘 해야죠. 좀 더 잘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에요. 점점 혼란스러운 걸 줄여나가야 할 것 같아서 연기적으로 노력하고 있어요. ‘꽃 3부작’을 찍으면서 배우라는 직업을 더 가깝게 느끼고, 뭔가를 하고 싶은 열망이 커졌어요. 대단한 욕심을 내기 보다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연기를 계속 하는 게 어렵잖아요. 올해 한 작품 정도 마음을 줄 수 있는 역할을 하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정하담은 자신의 인터뷰 기사에 대한 인상도 전했다. “두서없이 이야기 하는데 제 마음을 정갈하게 글로 정리 해 주시는 기자님들이 많으세요. 감사합니다.”
/서경스터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