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세대 기준)은 월평균 10만4,062원을 건강보험료로 내고 18만3,961원어치의 혜택을 받았다. 감기나 각종 염증으로 병원에 가면 누구나 건강보험 덕을 볼 수 있다. 성명재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에 따르면 지난 2014년 기준 1분위(최저소득층)가 정부에서 지원받은 사회보장과 공적연금, 건강보험급여 등은 605만원가량으로 최고 고소득자인 10분위도 1,045만원을 받는다. 나라 복지혜택이 어느 정도 골고루 나가는 셈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모든 국민이 세금을 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형편에 따라 부담할 수 있는 만큼 세금을 내는 것은 옳지만 우리나라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이들이 절반(근로소득자 기준)에 달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5년 현재 근로소득 면세자는 803만4,000명으로 전체 납세자의 46.5%에 달한다. 2013년과 비교하면 2년 새 297만8,000명이나 급증했다. 이런 상황에서 ‘부자증세’를 추진하게 되면 조세정의는 무너지고 재정 구조도 왜곡된다. 특정 계층에서 집중적으로 세금을 거둬 나머지에 뿌려주는 꼴이 되는 탓이다. 우리나라의 재정구조가 기울어진 수입구조를 갖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소득 5억원 이상자에 대한 최고세율 인상(40%→42%)은 이런 구조를 더 심화시킨다. 근로소득세만 놓고 보면 2015년 기준 과세표준 5억~10억원에 해당하는 이들의 수는 5,008명, 10억원 초과는 1,653명이다. 이들이 낸 근로소득세 총액은 연말정산 이전 기준 2조502억원으로 전체의 6.5%에 달한다. 하지만 5억원 이상 대상자 6,661명은 전체(1,298만5,686명)의 약 0.05% 정도에 불과하다. 이를 3억원으로 넓혀도 전체의 0.15%(1만9,625명)가 10.97%의 근로소득세를 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수 집중도가 급격하게 올라가고 있다. 소득세만 해도 올해 초부터 최고세율이 38%에서 40%로 인상된 상태다. 1년도 안 돼 최고세율이 오르면 세수 집중도는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구조는 국제적으로 봐도 높은 편이다. 2013년 미국의 면세자 비율은 35.8%였고 캐나다(33.5%), 호주(25.1%) 등도 우리보다 낮다. 영국은 2.9%에 불과하다.
법인세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은 지원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는 관념에 갇혀 각종 세제 혜택을 몰아주다 보니 대기업에 세 부담이 집중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5년 과세 대상 법인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7.1%는 세금을 안 냈다. 면세 법인 비중은 △2011년 46.2% △2012년 46.5% △2013년 47.1% △2014년 47.3% 등 매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 세금을 내는 중소기업도 세 부담이 상당히 낮다. 조세재정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연수입 20억원 이하 업체의 실효세율은 11.5%로 미국·영국·캐나다·프랑스·일본·독일 등 주요 6개국 평균(19.5%)보다 크게 낮았다.
중소기업의 세 부담이 작다 보니 대기업이 전체 법인세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는 구조도 고착화했다. 실제 법인세 신고 법인 중 상위 1%가 전체 법인 세수의 75.9%를 내고 있고 상위 10%로 넓히면 이 비율은 91.7%까지 치솟는다. 최근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대로 과세표준 2,000억원이 넘는 초대기업에 대한 세율이 22%에서 25%로 오를 경우 소수 대기업에 대한 세금 집중도는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10대 기업이 부담해야 할 세금만 1조4,0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과도한 세제 혜택으로 개인과 법인 모두 면세자가 많은 상황은 조세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복지 국가, 재정 확대 정책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차원에서도 고소득자·대기업뿐 아니라 중산층·중소기업 등의 세 부담을 전반적으로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김영필기자 서민준기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