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골프 골프일반

기대 내려놓고 무심하게…'구도자' 김인경 시즌 2승

LPGA 마라톤 클래식 최종

21언더…대회 사상 두번째 최소타

"우천 중단 때 영화 감상" 여유

내달 생애 첫 메이저 우승 도전

김인경이 24일 마라톤 클래식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어 보이며 미소 짓고 있다. /실베이니아=AP연합뉴스김인경이 24일 마라톤 클래식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어 보이며 미소 짓고 있다. /실베이니아=AP연합뉴스




김인경(29·한화)은 보통의 선수들과는 조금 다르다. 명상에 빠져 틈나는 대로 세계 곳곳의 사찰을 찾아다닌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배움을 얻고 마음 깊은 곳의 자신과 대화한다. 골프와 명상이 아니면 기타·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그린다. 실력이 수준급이다.


그에게는 우승도 결과가 아닌 과정이다. 골프를 매개로 더 넓은 세상, 더 많은 사람을 이해하려는 김인경에게 우승은 최종목표가 아니다. 24일(한국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마라톤 클래식(총상금 160만달러)에서 우승한 그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플레이가 나온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결과에 자랑스러워하는 것뿐 아니라 스스로 쏟은 노력에 자랑스러워하는 자세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제는 ‘똑순이’ 대신 ‘필드의 구도자(求道者)’라 불러야 할 것 같다.

이날 미국 오하이오주 실베이니아의 하일랜드 메도스GC(파71·6,476야드)에서 끝난 대회에서 김인경의 최종 스코어는 21언더파 263타였다. 1998년 박세리의 23언더파에 이은 대회 사상 두 번째 최소타 우승 기록. 선두 넬리 코르다(미국)에 2타 뒤진 2위에서 출발했지만 끝나고 나니 2위 렉시 톰프슨(17언더파·미국)과 4타나 차이가 났다. 지난달 초 숍라이트 클래식에서 우승했던 김인경은 한 달여 만에 시즌 2승이자 LPGA 투어 통산 6승째를 올렸다. 우승상금은 24만달러(약 2억6,800만원). 한 시즌 2승은 데뷔 후 처음이다. 올 시즌 2승은 김인경과 세계랭킹 1위 유소연만이 밟았다.


김인경은 전반에 이미 우승을 예약했다. 첫 4개 홀에서 버디만 3개를 잡으며 치고 나갔다. 전반 9개 홀에서 버디만 6개. 14번홀을 마친 뒤 비로 경기가 1시간 중단되기도 했지만 김인경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대기하는 동안 스마트폰으로 전날 다 못 본 영화를 마저 볼 정도로 여유가 넘쳤다. 김인경은 경기 재개 후 15·16번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으며 일찌감치 우승을 자축했다. 보기 없이 버디만 8개로 8언더파 63타. 페어웨이와 그린을 각각 한 번, 두 번씩만 놓치고 퍼트는 26개로 막는 완벽에 가까운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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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경은 올 시즌 톱20에 오른 게 두 번인데 그 두 번이 모두 우승으로 이어졌다. 이제 다음달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생애 첫 메이저대회 우승에 도전한다. LPGA 투어 11년차인 김인경은 2012년 ANA 인스퍼레이션(당시 나비스코 챔피언십)과 2013년 US 여자오픈 준우승이 메이저 최고 성적이다. 2012년 나비스코 마지막 날 마지막 홀에서 30㎝ 파 퍼트에 실패, 연장에 끌려가 준우승한 ‘그때 그 사건’은 골프팬 사이에 여전히 회자한다. 김인경에게는 머릿속에서 지운 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 사건 이후 LPGA 투어에서만 벌써 3승을 보탰다. 명상과 다양한 취미로 자연스럽게 악몽을 지웠다. 김인경은 “사람들은 당시의 실수에 대해 계속 얘기했다. 나는 그런 얘기에 신경 쓰지 않으려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봤다”며 “그 과정에서 인생의 가치도 바뀌었다”고 돌아봤다.

지적·발달 장애인들의 스포츠 축제인 스페셜올림픽의 국제 홍보대사로 활동한 것도 2012년부터다. 김인경은 김연아(피겨), 마이클 펠프스(수영), 다니 아우베스(축구) 등과 함께 지적·발달 장애인들의 스포츠 활동을 돕고 있다. 지난 숍라이트 대회 때는 장애우들의 현장 응원 속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김인경은 “그들은 나를 골퍼가 아닌 그저 친구로 대해준다. 스코어나 우승 여부로 나를 판단하지 않는다”며 “그들에게서 위안과 영감을 얻는다”고 말한다. 2010년 로레나 오초아 대회 우승 뒤 받은 상금 22만달러를 오초아 자선재단과 스페셜올림픽 후원에 절반씩 기부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최종성적2


지난주 US 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박성현은 13언더파로 공동 6위에 올랐다. 한국선수들은 올 시즌 20개 대회에서 10승을 합작했다.

양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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