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일본의 주요 언론들이 현대자동차의 구조적 위기를 지적하고 나섰다. 일본 언론들은 현대차의 부진에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논란으로 중국 시장에서 판매가 급락한 것이 1차 원인이 됐다면서도 미국 등지에서도 매출이 부진한 점 등을 들며 현대차가 근본적인 경쟁력 저하에 부딪혔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일부 매체는 노조가 6년 연속 파업에 돌입할 가능성에 주목하며 현대차가 내부에서부터 붕괴할 가능성마저 제기했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24일 “한국의 현대자동차가 ‘자괴(自壞·스스로 무너짐)’ 위기를 겪고 있다”며 사드 위기와 함께 제품의 경쟁력 약화, 강성 노조 등 현대차가 겪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집중 진단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영문판으로 한국의 대표 자동차업체인 현대차가 해외 매출 부진과 전략 부재로 중국과 미국 시장에서 ‘쌍둥이 위기’를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래형 車 개발 지지부진
노조는 R&D 더디게 해
이들 매체의 진단에 따르면 현대차 부진의 일차적인 원인은 한반도 사드 배치 논란 이후 이어진 중국 내 판매 급감이다. 지난달 현대차의 중국 내 차량 판매 대수는 전년 동기 대비 64%나 줄어드는 등 중국인들의 불매 운동은 현대차 매출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언론들은 지난달 미국과 한국에서의 판매가 모두 전년 동기 대비 하락하는 점을 들어 최근 현대차가 겪고 있는 위기를 단순히 지정학적 갈등의 여파로만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일본 언론들이 공통적으로 내놓은 근본 요인은 전략 부재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12년부터 중국 자동차 기업들은 제품 개선과 가격 인하 전략으로 외국 브랜드와의 경쟁력을 갖춰왔다”며 “일본 브랜드는 고급 세단으로 프리미엄 시장에 집중했지만 한국 자동차 업계는 어중간한 위치에 머물렀다”고 지적했다. 산케이 역시 “일본의 마쓰다는 ‘조작이 편리하다’, 독일의 폭스바겐은 ‘연비가 좋다’는 브랜드 이미지가 확립됐지만 한국차는 강점이었던 가격 경쟁력이 중국 업체들의 대두로 희석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미국에서의 대응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산케이는 “미국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픽업트럭 모델 확충이 늦어졌다”고 비판했으며 니혼게이자이 역시 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해 “(현대차의) 경쟁사들은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고 있는데 미국에서 현대차의 주력 모델은 3~4년 전 출시된 쏘나타와 싼타페”라고 꼬집었다.
사드發 中 판매량 급락에
미국 등지서도 매출 부진
근본적 경쟁력 저하 직면
현대차는 친환경·자율주행 등 미래형 자동차 개발 경쟁에서도 밀리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은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는 현대차가 우버·바이두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과의 협업으로 차세대 자동차를 개발하는 노력을 하지만 여전히 사업구조가 내연기관 자동차에 치우쳐 있다며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신문은 이어 네이버가 지난 3월 공개한 자율주행차가 현대차 모델이 아닌 도요타의 프리우스를 기반으로 제작된 것을 현대차가 “장기적 도전”에 부딪힌 예로 지적했다.
강성 노조도 현대차의 위기를 초래한 문제로 지목됐다. 산케이는 14일 현대차 노조의 조합원 재적인원 중 65.9%가 파업에 찬성표를 던졌다며 “실제로 파업에 돌입하게 되면 하반기 실적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문은 “현대차의 1인당 평균 연봉은 도요타나 폭스바겐 등 해외 업체보다 20% 정도 높아 친환경·자율주행차 등 향후 자동차 시장의 승패를 결정지을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R&D) 투자를 늦추는 요인이 된다는 지적이 있다”며 “이 상태로는 현대차의 몰락이 불가피해 한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현대차 노조는 공장의 자동화에도 인력 감축을 막으려 하고 있다”며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요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