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에너지 사업 수주에 사활을 걸어온 일본 정부가 원자력에서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으로 중심축을 옮기기 시작했다. 6년 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한국과 베트남 등에서 탈(脫)원전 움직임이 일며 해외 원전사업 여건이 악화하자 수출노선 변경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필리핀 LNG 개발사업을 따내기 위한 민관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고 24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필리핀국영석유회사(PNOC)는 LNG 조달 시스템에서 발전소 건설까지 포괄하는 2,000억엔(약 2조원) 규모의 ‘올인원(all-in-one)’ 사업을 발주하고 연내 사업체를 선정할 예정이다. 필리핀은 오는 2020년대 중반께 자국 가스전이 고갈될 것으로 보고 LNG 기지 건설을 서두르고 있다.
이 사업에 일본의 도쿄가스·오사카가스·미쓰이물산 등 민간업체가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국내는 물론 미국·호주 등에서의 LNG를 개발 및 공급해온 경험을 토대로 동남아시아에서 안정적으로 사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필리핀 정부 측에 강조하고 있다. 가스업체들은 이미 필리핀에 거점을 두고 현지 공략에 나섰다. 일본 정부도 국제협력은행(JBIC)을 통한 자금지원을 추진하고 고위관료가 직접 비즈니스 외교에 나설 방침이다.
일본이 이처럼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동남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원자력 대신 비교적 환경문제가 적은 LNG 수요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동남아 국가들은 경제성장으로 에너지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으며 탄소배출 문제가 비교적 적은 LNG가 향후 발전용 연료로 각광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동남아에서 LNG 수요는 2040년까지 해마다 2%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석유천연가스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에 따르면 베트남·인도네시아에서는 이미 10기 이상의 LNG 기지 건설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반면 일본이 주력해온 원전사업은 해외시장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 신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베트남이 애초에 추진했던 원전 건설계획을 철회했으며 한국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탈원전 정책이 부상하는 등 해외시장 여건이 불투명해졌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LNG는 석탄과 비교해 가격은 비싸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절반밖에 되지 않아 원자력을 대체하는 화석연료로 각광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