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속, 단단한 일렉트릭 기타 소리에 맞춰 윗옷을 벗은 채 거칠게 헤드뱅잉(음악에 맞춰 머리를 격렬하게 흔드는 행위) 하는 남성 관객들. 흔히 생각하는 록 페스티벌의 이미지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 축제도 변하는 법. 지난해 ‘지산 밸리록 페스티벌’에 ‘뮤직앤아츠’를 더한 ‘2017 지산 밸리록 뮤직앤드아츠 페스티벌’(이하 ‘밸리록’)도 마찬가지다. 28일부터 30일까지 3일간 경기도 이천 지산리조트에서 열리는 ‘밸리록’을 위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인 100여 팀이 출격 준비를 마쳤고 ‘음악과 미술의 결합’을 보여줄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이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한여름 밤 음악과 함께하는 계곡 속 야외미술관
‘밸리록’ 개막 하루 전인 27일 찾아간 지산리조트는 야외미술관을 방불케 했다. 숨바꼭질이라는 전시 주제처럼, 무대 사이사이를 이동할 때마다 곳곳에 숨어있던 작품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입장하자마자 진주처럼 빛을 발하는 구조물이 눈에 띈다. 윤사비의 ‘프리즘’이다. 빛을 받으면 사이키 조명처럼 화려하게 빛나는 이 작품은 그 앞에 선 관객을 무대 위 뮤지션이 된 듯 들뜨게 만든다. 영국 밴드 킨의 앨범 재킷을 비롯해 연기자 유아인, 가수 지드래곤 등과 협업한 작가 권오상은 ‘뉴 스트럭쳐’ 연작을 통해 밸리록에 참여하는 주요 뮤지션과 관련된 이미지를 입체 구조물로 만들었다. 권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모빌’로 유명한 미국의 조각가 알렉산더 칸더의 ‘스테빌’이란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미술가이자 음악가인 이병재와 이윤호 사진가가 운영하는 팀 ‘신도시’는 ‘계곡에서 즐기는 펀(fun)한 실험적 예술’을 추구한다. 이들은 밸리록에서 ‘히든 바(Hidden Bar)’를 운영하고 지게차를 개조해 디제잉 공간을 만들었다. 밤이 되면 어둠이 깔린 계곡 속에서 화려한 레이저 쇼와 함께 ‘0시의 디제잉’을 선보여 일상 속 예술공간이 클럽 스테이지로 변신한다. DJ 셸피, 시시, 콴돌, 담비 등이 참여한다. 밸리록 관계자는 “페스티벌이 흔히 릴레이 콘서트처럼 공연의 연속이거나 음주가무의 장으로 구성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번 밸리록은 마치 해외여행을 하듯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고 더 깊은 여운을 남기기 위해 미술가와 협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록 페스티벌 맞아? 포크, EDM까지 외연을 확장한 라인업
‘신현희와김루트’, ‘지코(ZICO)’, ‘메이저 레이저’… 그동안의 록 페스티벌에 익숙했던 팬이라면 이번 ‘밸리록’의 라인업에 당황할 지 모른다. 포크, EDM 등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이 여름밤 계곡으로 총출동했기 때문이다. 축제 첫날인 28일 밤을 장식할 메이저 레이저는 3인조 EDM 프로젝트 그룹으로 2015년 DJ 스네이크, 뫼(MØ)와 협업한 곡 ‘린온(Lean On)’으로 전세계 31개국 차트 1위를 석권한 바 있다. 팀의 주축인 팝 프로듀서 디폴로는 빅뱅의 지드래곤과 탑, 투애니원의 씨엘(CL)과 협업해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하다. ‘오빠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신현희와김루트 역시 치명적인 달콤함을 선사한다. 밸리록 관계자는 “변화하는 트렌드 속 세계적인 흐름에 따라 음악적 다양성을 넓히려 한다”며 “록에 방점을 둔 페스티벌을 넘어 ‘음악’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록 페스티벌 본연의 정체성을 잃은 것도 아니다. 축제 마지막날인 30일 오후 10시부터는 고릴라즈의 무대가 기다리고 있다. 밴드 블러의 프론트맨 데이먼 알반과 만화가 제이미 휴렛이 만든 가상의 4인조 혼성그룹 고릴라즈는 영국에서 5회, 미국에서 2회의 플래티넘을 기록한 인기 밴드다. 지난 4월 6년 만의 신보 ‘휴먼즈’로 컴백한 이들은 여전히 혁신적인 음악으로 여름밤 계곡을 찾은 관객들에게 록 스피릿을 선사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이미 두 번의 내한공연으로 팬층을 확보한 시규어 로스의 서정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느낌 음악이 뜨거운 밤을 달군다.
/이천=우영탁기자 ta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