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집권기간 동안 실천할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이를 실천하려면 5년간 178조원, 연평균 35조6,000억원이라는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다. 이 돈은 지난해 대비 올해 늘어난 세입예산(14조원)의 2.5배에 달한다. 정부는 필요한 재원 178조원 중 세출 절감으로 95조4,000억원, 초과 세수 증대로 60조5,000억원, 비과세·감면 정비 등으로 22조1,000억원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우리나라 예산은 지출이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줄일 수 없는 ‘경직성예산’이 68% 정도에 달한다. 여기에 문 대통령은 전년 대비 7% 정도의 예산을 매년 늘리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이런 예산 구조에서 ‘세출 절감’으로 5년간 95조4,000억원을 마련하겠다는 재원 조달 계획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세계 각국이 투자 유치를 위해 세율을 내리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는 대기업과 부자에게 적용되는 세율을 올려 세수 3조8,000억원을 확보하는 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 추세에 역행해 우리만 세율을 올리면 국내 투자와 고용이 줄어든다. 경제계는 법인세율이 3%포인트 오르면 해외로 빠져나가는 자본이 연 29조원에 달하고 세수는 오히려 최소 1조원에서 최대 2조3,000억원이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근 5년간 주요 대기업들의 해외 직접투자 급증으로 일자리 136만개가 해외로 빠져나갔다. 법인세율 인상이 당장 곶감이 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일자리와 세수를 줄이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에게 세금청구서를 내밀기에 앞서 증세의 선행 순서부터 이행하기 바란다. 이것이 납세자인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먼저 누수 복지예산을 막고 공약 구조조정부터 해야 한다. 지난 대선이 치열하게 치러지면서 내놓은 인기영합 공약 대부분이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됐다. 예산 낭비가 우려된다. 정부는 국민의 호주머니는 생각하지 않고 공무원 늘리기, 최저임금 일부의 국고지원 등 포퓰리즘적 선심성 정책에 혈세를 쓰는 것부터 자제해야 한다.
또 세법 개정의 원칙은 ‘넓은 세원, 낮은 세율’에 있다. 현재 근로자와 법인의 절반이 세금 한 푼 안 내는데다 부동산과 주식·금융과 관련한 부자소득이 광범위하게 과세대상에서 빠져 있다. 고소득 자영업자는 소득의 30%를 줄여서 신고하는 등 탈세가 만연돼 있다. 이와 같이 누락 세원을 방치하고 ‘부자증세’ 한다면서 최고세율만 올리면 정부 스스로 증세에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고 세 부담의 편중만 심화시킨다.
우리나라 세(稅) 수입의 95%는 자진납부 세금이고 국세청의 세무조사로 늘어나는 세수는 5%(약 10조원) 정도다. 정부가 세율을 올려 확보하겠다는 5년간 세수 19조원은 문재인 정부의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의 10%에 불과하다. 그리고 한국의 소득세 최고세율(40%)과 법인세 최고세율(22%)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을 웃돌거나 비슷하다. 세율을 올릴 수 있는 여력은 이미 한계점에 와 있다.
법인세·소득세의 최고세율 인상과 같은 편협적이고 이념적인 ‘표적증세’로 공약이행에 필요한 재원 178조원을 마련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표적증세’는 노무현 정부 시절 실패한 ‘1(부자증세)대99(중산서민층 감세)’의 편 가르기 식 증세프레임을 답습하는 것이다.
정치권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세원을 대폭 확대하거나 부가가치세율 인상과 같은 ‘보편적 증세’에 나설 수 없는 시점에서 유일한 재원확보 전략은 납세자의 자진납부 세수를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 이를 위해 정부는 시장 개입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그러면서 민간의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노동개혁과 규제 완화로 경제 주체의 활력을 부추겨 최대한 ‘경제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이래야 일자리와 소득(세원)이 증가하면서 법인세·소득세·부가가치세 등 모든 세목의 자진납부 세수가 늘어난다. 경기침체로 세수의 95%를 차지하는 납세자의 자진납부 세수가 줄어들면 아무리 증세를 강화하더라도 백약이 무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