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조금 바뀌기는 했으나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필자는 수업내용과 상관없는 얘기를 수업 중에 하는 것을 철저히 ‘기피’해왔다. 기피라는 표현을 쓴 것은 때로는 단편적인 수업과 관련한 지식보다는 이런 종류의 얘기들이 학생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앞으로 더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필자가 이를 먼저 시작한 적도 없지만 설령 학생들이 그런 질문을 해도 적당히 무시해왔음을 뜻한다.
명분은 늘 ‘수업내용을 채우기도 바쁜 판국에….’였지만 따지고 보면 필자가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많은 학생들을 감복시킬 만큼 뛰어난 언변을 소유하지도 못했을뿐더러 무엇보다도 인생 그 자체에 대해 별로 많은 정답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보다 솔직한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 전부터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꼭 해주는 얘기가 하나 있다.
필자의 경우 전공과목 중 학부 2학년생들이 주로 듣는 기본과목에서는 중간고사를 본다. 채점이 끝난 후 학생들에게 자신의 답안지를 나눠주는데 이를 받는 학생들의 표정에서 필요 이상의 긴장감을 발견할 때가 많다. 단지 1~2점 때문에 자신의 앞날이 바뀔 수도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그들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일 테지만 안타까움에 대충 이런 요지의 얘기를 해준다.
“중간고사 점수에 너무 연연하지 마라. 기말고사를 통해 최종성적은 충분히 변동될 수 있다. 그러나 최종학점이라는 것도 너희 인생에서 하등 중요한 것이 못 된다. 중요한 것은 이 과목에서 실제로 배운 것들일 텐데 솔직히 너희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마저도 제대로 된 공부는 아니라고 본다. 제대로 된 공부란 ‘재미있어서’ 할 때 나오는 것이지 ‘해야 되기 때문에’ 할 때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너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그런 공부’가 아니고 ‘노는’ 것이다. 학과공부는 대충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만 하고 대신 열심히 놀아라. 죽도록 연애도 해보고 처절한 실연도 해봐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일반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도 보고 그들과 이리저리 부대끼며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배워라. 그러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로 재미있어 하는 것’을 찾기를 바란다. 공부는 그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어디나 비슷하겠지만 필자가 몸담은 학부의 학생들 역시 요즘은 대부분 법학대학원으로 진학하는 것, 공무원 시험을 통해 정부공무원이 되는 것, 일반기업(특히 금융공기업)에 취업하는 것 중 하나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 아마도 이들의 눈에는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 그 직업들이 가장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우리나라를 가리켜 헬조선이라고 부르고 있다. 끝없는 경쟁 속에서 극히 일부만이 살아남는 취업 전선과 아무리 벌어도 변변한 집 한 칸 마련하기 버거운 생활 전선에 내몰린 것이 요즘 젊은이들이다. 그들에게 사회를 이렇게 만든 데 큰 몫을 한 것으로 여겨지는 베이비붐 세대 중 한 사람인 필자가 ‘너무 주어진 환경만을 탓하면서 이에 매몰되기보다는 좀 더 여유롭게 멀리 보면서 도전하기 바란다’고 한다면 이는 필시 세상 물정 모르는 꼰대의 지극히 무책임한 실언쯤으로 치부될 것이다.
물론 부모세대로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주지 못한 미안함은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기성세대가 공통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어려움은 어느 시대든 늘 있어 왔고 필자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직접 보고 들은 바에 의하면 지금 우리 사회가 결코 지옥이라 불릴 정도로 열악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그 어려움은 회피하거나 누구를 비난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도전하고 극복하려 할 때 해결된다는 것이고 필자의 경우 지금 개인적으로 절실히 깨닫고 있지만 도전을 게을리한 삶은 성패에 상관없이 반드시 후에 후회하게 된다는 점이다.
김선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