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플랑드르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우유 수레를 끄는 덩치 큰 충견 파트라슈,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인자한 할아버지와 함께 화가의 꿈을 키우며 살아가는 마음 착한 소년 네로. 마리아 루이즈 드라 라메의 1872년 작품 ‘플란다스의 개’의 주인공이다.
사람과 동물이 나누는 애정을 담아낸 이 소설은 지난 1975년 닛폰애니메이션과 후지TV가 제작한 만화영화로 우리에게 더 친숙하다. 네로와 파트라슈가 모두 죽게 된다는 슬픈 결말 때문에 방영 기간 내내 제발 주인공을 죽이지 말아달라는 읍소(泣訴)가 밀려들고 서로의 몸에 의지한 채 교회당의 루벤스 그림 아래에서 네로와 파트라슈가 얼어 죽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이걸 보고도 안 울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인간성 평가 기준이 제시되는 등 큰 인기를 모았다.
반려동물 및 동물복지 내용이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된 2017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아름다운 소설 속 내용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도고 아르헨티노. 언뜻 보면 아르헨티나 어디쯤의 숙박시설 이름 같은 이 낯선 단어가 얼마 전 스타급 연예인도 해내기 어렵다는 ‘실검 1위’에 등극했다.
맹수 사냥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낸 품종인 이 개가 서울 도심 주택가에서 느닷없이 지나가던 시민들을 덮쳐 30대 여성이 중상을 입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세 마리만 있으면 호랑이도 잡는다는 풍산개가 뒤를 이었다. 경북 안동에서 혼자 살던 70대 할머니는 직접 밥을 주고 키우던 풍산개에 목을 물려 목숨을 잃었다.
개에 의한 ‘강력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농림축산식품부는 목줄과 입마개 착용이 의무인 맹견 종류의 확대와 견주에 대한 처벌 강화를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관리와 처벌이 가능한지’ 실효성 논란에 부딪혀 아직 제대로 된 회의 한 번 열리지 못했다.
4가구 중 1가구가 동물을 키우는 반려동물 전성시대의 ‘어두운 그늘’이라는 개물림 사고. 인명피해가 발생하면 견주를 최대 징역 14년까지 처벌할 수 있는 영국 등 일부 나라에 비해 사람이 죽더라도 ‘과실치상 혐의’로 입건되는 정도로 끝나는 솜방망이 처벌과 관련법 미비가 원인으로 지적된다.
낮은 수준의 처벌도 문제지만 ‘문제의 개 뒤에는 문제의 주인이 있다’는 말처럼 일부 개 주인들의 안전불감증과 낮은 책임의식이 더 큰 문제다.
선진국처럼 개와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고 실제로 교육을 받았다는 견주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 집 애는 똑똑해서 물지 않는다’는 맹목적인 믿음에 서울시가 운영하는 공원 7곳에서만 적발되는 ‘목줄·입마개 미착용’ 건수는 매년 평균 6,000건에 달한다.
정부는 ‘사람과 동물의 공생’을 천명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개에 물리고 있다. 얼마나 똑똑한지 알 길이 없는 ‘물지 않는’ 우리 집 개는 지난 2015년 기준 513만마리(등록된 개는 107만마리)로 추산된다. 그리고 그러기를 바랐던 개에 물려 사람이 죽거나 다친 사고는 2011년 245건에서 2015년 1,488건으로 6배 넘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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