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등의 블랙리스트 사건 1심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황병헌 부장판사)의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 정무수석실·교육문화수석실에서 ‘문제단체 조치 내역 및 관리방안’ 등을 보고받았다고 인정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예산 삭감 방안을 보고받고 김상률 당시 교문수석을 통해 ‘흔들림 없이 추진하라’는 지시를 전달한 점도 확인했다. 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13년 12월19일 “좌파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계 권력을 되찾아와야 한다. 나라가 비정상이다”라는 취지로 발언한 사실도 인정됐다.
하지만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범행을 지휘함으로써 공모공동정범으로서의 책임을 진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적시했다. 김 전 실장과 김 전 장관 등 블랙리스트 사건 피고인들은 유죄지만 관련 정책을 보고받은 대통령은 공범이 아니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대통령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보고받았을 개연성은 크지만 어느 정도까지 대통령에게 보고됐는지 알 수 없고 범행과 관련된 내용을 승인 내지 지시한 것으로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며 공모 관계는 인정하지 않았다. 또 박 전 대통령이 보수 성향 국민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만큼 “좌파에 대한 지원 축소와 우파에 대한 지원확대를 표방한 것 자체가 헌법이나 법령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법원 판단을 두고 여권을 중심으로 한 반발이 거세다. 판사 출신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리 헌법은 진보·보수를 구별하지 않도록 하고 있음에도 재판부는 보수 대통령이 진보예술인을 차별한 것에 문제없다고 판단했다”며 “모순이 극명하다”고 지적했다. 법원 관계자는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정책 기조만으로는 헌법·법령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판시했을 뿐”이라며 “박 전 대통령이 문화계 지원 배제를 지휘했다는 구체적 증거가 나오면 이런 판단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