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얼룩무늬 전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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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설가 스탕달의 ‘적과 흑’에서 적은 붉은 군복을, 흑은 검은 사제복을 상징한다.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왕정이 복고 된 19세 초 프랑스 사회에서 적과 흑은 권력과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스펙이었다. 20세기 이전까지 군복은 스탕달의 소설처럼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적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해서다. 눈에 잘 띄는 화려한 색상의 군복은 병력의 많고 적음이 전장의 승리를 좌우한 근대 전투까지 통했다. 화려함의 정도가 계급에 비례한 것은 물론이다.


무기 성능이 향상되면서 화려한 군복은 설 땅을 잃고 만다. 적에게 쉽게 노출되는 치명적 결함 탓이다. 얼룩무늬가 새겨진 위장 전투복을 실전에 본격 보급한 나라는 독일이다. 2차 대전 때 독일 최정예 무장 친위대는 기존 군복 위에 양면으로 된 얇은 위장복을 걸쳤다. 독일은 이후 공수부대와 보병·기갑병용을 따로 만들었다.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은 근접 보병 전투에서 카멜레온처럼 위장한 독일군에게 애를 먹었다. 보병의 전투력이 입증되자 미국도 독일군을 본떠 위장복을 시험 보급했지만 역효과만 냈다. 독일군인 줄 알고 오인사격이 잦았던 것이다. 미국은 결국 유럽 전선에서 위장복을 포기하고 태평양 전선의 해병대에 보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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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이 ‘개구리복’으로 불리는 위장 전투복을 일반 보병에게 보급한 시기는 1990년이다. 4년 뒤에는 야전 상의도 얼룩무늬로 바꿨다. 신병부터 지급하자 고참이 휴가 때 신참의 야상을 빌려 입고 나가기도 했다. 이전의 국방색으로 통하는 카키색 민무늬 전투복은 영국군이 효시다. 19세기 중반 인도 세포이 반란 때 흰색 군복을 입은 영국 병사들이 노출을 피하기 위해 진흙과 먼지를 묻힌 데서 유래했다. 카키라는 말은 흙먼지를 뜻하는 힌디어다.

위장 전투복을 입고 열병식을 사열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진이 어제 신문 지상을 장식했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키우는 중국, 시진핑의 강군몽(强軍夢)을 봉쇄하려는 미국, 전쟁 가능한 나라를 꿈꾸는 일본.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무장한 북한의 도발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시계는 위장 전투복처럼 흐릿하기만 하다. /권구찬 논설위원

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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