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런던에서 만난 한 나이지리아 출신 인사는 세계인들의 평판을 인용하며 미국에 이같이 일갈했다. 그는 결기와 조롱이 뒤섞인 어조로 “미국은 완전히 미쳤다”며 “내가 속한 아프리카도 정상은 아니지만 미국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더블린에서 만난 젊은 아일랜드 여성은 한술 더 떴다. 컬럼비아대 졸업 후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고 뉴욕에서 9년을 살았다는 그는 “유럽인으로서 내가 지닌 가치가 요즘 미국의 가치와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정을 꾸리고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려면 유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자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과거에도 반미 감정이 휩쓸고 지나간 적은 몇 차례 있었다. 그러나 이번은 상황이 크게 다르다. 첫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이한 대선 출마와 그의 당선에 뒤이은 극한 혼란 등 돌아가는 상황이 충격 그 자체다. 골수 공화당원인 칼 로브조차 대통령을 “앙심을 품은 충동적이며 근시안적 인물”로 매도하고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에 대한 대통령의 공개적 폄하를 “불공정하고 부당하며 꼴사납고 어리석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하지만 미국에 대한 평판이 급락한 배경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37개국을 대상으로 한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의 수가 전 세계에서 크게 늘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두려움과 조롱의 대상보다 훨씬 나쁜 그 ‘무엇’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처럼 미국은 점차 하찮은 존재가 돼가고 있다.
퓨리서치 조사에서 트럼프의 인기는 22%로 바닥 수준이었다. 물론 예상했던 결과다. 하지만 이 조사 결과는 미국 대통령을 대체할 새로운 국제사회 지도자가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도 보여줬다. 국제 문제에 제대로 대처한다는 평가를 받아 마땅한 지도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트럼프라는 응답보다 약간 높았다. 특히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트럼프보다 2배 이상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미국에서조차 트럼프보다 메르켈 총리를 신뢰한다는 대답이 더 많이 나왔다. 조사 결과가 트럼프 대통령에 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셈이다.
트럼프는 푸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진전이 없던 유럽통합도 이뤄냈다. 트럼프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대중주의 등의 도전에 직면한 유럽에서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유럽인들 사이에 하나의 유럽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더욱 심도 있는 유럽통합 계획이 추진되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선거공약대로 유럽에 보호무역주의 조치를 취할 경우 구대륙의 통합 의지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메르켈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쌍끌이’ 지도력 아래 유럽은 행동주의적인 글로벌 어젠다를 채택할 것이다.
미국 북쪽에 자리한 이웃국가인 캐나다의 외무장관은 최근 친밀하면서도 계산된 어조로 “미국은 국제사회 지도자로서의 부담을 질 의향이 없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면서 “그 책임을 캐나다를 비롯해 국제 시스템과 자유무역·인권을 지지하는 국가들에 넘겼다”고 강조했다. 중국 지도부는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협정을 맺는 등 전 세계의 무역과 투자를 촉진하는 수석 기획자를 자처하며 처음부터 고립주의로 기운 트럼프의 수사와 대외정책을 적극 이용하고 있다.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유럽 10개국 가운데 7개국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라고 믿는다.
가장 실망스러운 조사 결과는 트럼프보다 미국에 대한 호감도가 낮다는 사실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말 여론조사에 참여한 응답자의 64%는 미국에 호감을 보였으나 현재의 호감도는 49%로 추락했다. 미국의 대외정책도 인기가 없다. 미국과 미국의 아이디어를 믿는 사람의 수는 이전보다 대폭 줄었다.
지난 2008년 ‘흔들리는 세계의 축(The Post-American World)’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미국의 몰락이 아니라 나머지 세계의 부상(the Rise of the Rest)에 관해 이야기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편협성과 무능·무질서로 ‘미국 이후’의 세계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영글어가고 있다.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 ‘GPS’ 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