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단군 때 정족산성 축조' 전설 아닌 역사적 사실일 수도

군사고고학연구회장 남창희 교수

5년간 동북아 고대 산성 비교 통해

'4,000년 전 축조 가능성' 첫 제시

"세종실록지리지 기록 신빙성 있어

확인 땐 유네스코 등록 손색 없다"



“인천 강화도 정족산성(삼랑성)의 실제 축조 시기가 4,000년 전일 가능성이 큽니다.”

군사고고학연구회 회장인 남창희(사진) 인하대 교수는 지난 5년에 걸친 중국과 일본 등 동북아시아 고대 산성 비교 연구 과정에서 정족산성의 구조와 위치에 대한 군사학적 검토 결과 강화도 정족산성이 실제 고조선 초기인 4,000년 전에 축조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2일 밝혔다.


전등사가 위치한 정족산성은 전형적인 포곡식 산성으로 가파른 외측면 산세를 이용한 천혜의 군사기지다. 포곡식 산성은 계곡을 둘러싼 능선에 산성을 쌓아 성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의 성을 말한다.

지난 1866년 병인양요 때 양현수 장군이 강화도에 상륙하려는 프랑스군을 격퇴했을 정도로 정족산성은 방어에 유리한 지형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정족산성의 축조 시기와 관련해서는 고려시대에 처음 쌓았다는 기록이 고려사에도 없고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전설에 의존해야 할 정도로 먼 과거에 축조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 때문에 축조 시기를 놓고 학설이 분분한데 남 교수팀은 한성백제 시기와 3,500년 이전이라는 두 개의 군사학적 가설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시했다.


남 교수는 “군사 지리적 위치와 수용 능력의 데이터를 결합하면 정족산성은 해양력이 발달한 북방 세력의 전방작전기지로 효용이 높았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한반도 내륙의 전략적 가치 중심을 노리는 적대 세력의 원정 상륙을 막는 방어기지로서도 효과적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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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교수팀과 권태환 국방대 교수는 BC 8세기부터 한성백제 말기 475년까지 약 1,200년간의 동북아 국제 관계 주요 변동 시점에서 정치군사 모의분석을 실행했다. 남 교수는 “그 결과 강화도에 대형 기지를 설치할 전략적·작전적 필요는 BC 8세기 이전과 한성백제 시기에 존재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그러나 한성백제 시기보다는 2,800년 이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잠정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삼국시대 이전 해양력 발전의 지표는 천문기록과 항해인데 두 가지를 충족시킨 국가는 고대 동북아에 고조선뿐이었다는 주장이다. 중원 문화에 없는 고인돌의 별자리 새김문화와 신석기 시대 원양 어로 암각화의 존재가 고조선의 앞선 해양력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또 고조선 말기에는 제나라·연나라 등 대륙 세력의 위협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고조선 남쪽 주변부인 강화도에 대규모 군사시설을 설치할 필요가 없었다는 해석도 나왔다. 따라서 정족산성은 BC 2,300년께 고조선 초기 세력권이 한반도 남쪽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토착 해양 세력과의 갈등 흔적이라고 남 교수팀은 해석했다. 남 교수는 “초대 단군 때 참성단과 삼랑성을 쌓았다는 세종실록지리지의 공식 기록을 전설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김연성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소장은 “정족산성이 4,000년 전에 축조된 것으로 확인되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서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인천=장현일기자 hichang@sedaily.com

장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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