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기자의 눈] 자영업의 시작과 끝은 ‘自’

박해욱 성장기업부 기자

박해욱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시민들이 종사하는 직종은 무엇일까. 언젠가 술자리에서 나온 이 뜬금없는 질문에 평상시 혜안이 넘친다고 자랑하던 한 친구는 “단언컨대 자영업자”라고 외쳤다.


“둘러봐. 이 술집 안에 스무 명 정도가 있거든. 이 중에서 극히 일부의 전문직과 직업이 ‘아빠 아들·딸’인 애들을 제외하면 거의 모두가 어느 정도의 흙수저일테고 그들은 이미 자영업자이거나 혹은 장차 똑같은 운명이 될 예비 자영업자일 수밖에 없어.”

여러 통계를 종합해볼 때 그 친구의 혜안(?)은 나름의 설득력이 있긴 하다. 2015년말 현재 국내 자영업자수는 479만명인데 통계청의 직업소분류별 취업자 순위를 보면 1위는 경영관련 사무종사자로 그 숫자는 자영업자의 절반도 안 되는 223만명이다.

가장 많은 시민들이 생계를 위탁하고 있는 직종이지만 자영업은 늘 ‘쩌리(비주류를 일컫는 은어)’ 취급을 받아왔다. 생각해보면 자영업과 관련된 관용표현 중에는 비하적 성격이 많다. “정 안 되면 식당이라도 차리지 뭐”, “너 그러다 치킨집 사장 마누라된다” 등 하향식 가치평가가 녹아 있는 것들 투성이다. 그러나 자영업은 그 하찮음에 비해 소중히 다뤄져야 할 것이기도 하다.

자영업은 고용의 질이 매우 낮다. 자영업은 제도권 고용시장에서 갈 길을 잃은 이들이 찾는 마지막 출구다. 이 마지막 열차에서 퇴출당한 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은 갑질시대의 주된 표적인 비정규직 일자리밖에 없다. 더불어 잘 사는 나라를 꿈꾸는 정부라면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는 다양한 정책을 동원해 자영업 문제 해결에 나섰다. 특히 정부정책은 이 시장으로의 유입인력을 차단하는 식으로 전개돼왔다. 안타깝게도 이 정공법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자영업 시장에는 여전히 매년 100만명 가량의 신규인력이 유입되고 있고 가장 중요한 지표인 생존율은 ‘3년 안 70% 폐업’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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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이쯤에서 우리는 자영업의 본질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영업 롱런시대, 이제는 상인정신이다’ 시리즈에서 누차 강조했듯 자영업은 ‘스스로 영위하는 업’이다. ‘자발(自發)적이고 자립(自立)할 수 있는 자습(自習)형 창업’, 이른바 ‘3自’가 담긴 창업이 진짜 자영업이다.

하지만 국내 자영업 시장에는 이 3自가 없다. ‘떠밀려 한 창업’, ‘가맹본부에 모든 것을 의존하는 창업’, ‘일단 지르고 보자 식의 창업’이 일상화된 시장에서 3년 내 70%의 폐업율은 어찌 보면 시장의 자연스러운 구조조정 결과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자영업종의 낮은 생존율, 프랜차이즈의 악덕행위 등을 지적하는 기사들이 쏟아지면서 시장 공포지수는 역대급으로 올라서고 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자영업의 본질에 천착하면서 오랜 기간 생존을 이어가는 자영업자들이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망하는 7’이 아닌 ‘시장에서 살아남는 3’, 그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자영업 시장을 생산성이 높은 서비스업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선 유입인력을 줄이는 외부적 접근뿐만 아니라 자영업 종사자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내재적 접근도 중요하다. 예비 창업가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맞춤형 교육과 유입인력의 양적 완급조절을 위한 일자리 대안 등의 인프라 구축이 시급한 이유다.

건국 이래 처음으로 중소벤처기업부가 출범했다. 자영업 정책을 책임지는 소상공정책국이 소상공정책실로 격상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난 정부들이 생각해내지 못했던 실효적·창의적 정책들이 도출되기를 기대한다.

자영업 정책의 시작과 끝은 ‘自’이다.

박해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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