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시대에 전체 수출의 98%를 원유 및 천연가스 수출에 의존해왔던 알제리는 저유가 기조가 지속됨에 따라 외환보유액 감소, 무역수지 적자 누적 등으로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알제리 정부는 외국인 투자유치를 통한 제조업 육성을 경제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두고 이를 위해 수입규제 장벽을 쌓고 한편으로는 외국인 투자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이 아닌 알제리는 지난 2015년부터 수입 규모가 큰 자동차에 강력한 쿼터제를 실시하고 있다. 쿼터제란 전체 차량 판매 부분에서 수입산 차량의 판매량을 특정비율로 고정시켜 자국산 차량의 판매를 도모하는 대표적인 비관세 장벽이라고 할 수 있다. 고유가 시대에는 연간 40만여대의 자동차를 수입했는데 2015년에는 15만대, 2016년에는 8만3,000대로 쿼터를 정하더니 올해에는 5만대 수준에서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4년 9월, 독일의 메르세데스벤츠가 가장 먼저 알제리에 군용자동차 공장을 건설해 납품하고 있으며 같은 해 11월, 프랑스 르노자동차가 4만2,000대를 생산할 수 있는 승용차 현지 조립공장을 건설해 알제리 자동차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쿼터제 도입으로 고전하고 있었던 현대자동차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현지 파트너가 전액 투자한 승용차 및 상용차 조립공장에 부품을 공급해 성공적으로 시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쿼터량은 점점 축소되고 있지만 긍정적인 소식도 있다. 최근 신규 고속도로가 연이어 개통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인 저유가에 힘입어 차량 평균 주행거리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알제리의 자동차 판매는 연평균 5.1%씩 늘어나고 있다. 또 운행 중인 500만대 이상의 차량 중 절반 가까이가 제작된 지 20년 이상 된 노후차량이라는 점에서 신차수요가 나날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타고 있는 차량을 오랫동안 사용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필터를 교체하는 경향으로 봐 노후차량의 비율이 높은 만큼 자동차 부품뿐만 아니라 필터와 같은 자동차용품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알제리의 주요 오일필터 수입국은 중국·독일·프랑스이며 중국산의 수입시장 점유율이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는 점을 눈여겨볼 만하다.
여기에 더해 올 하반기부터는 휴대폰을 포함해 주요 가전제품에 대해서도 쿼터제를 실시하고 있어 알제리 시장 진출을 희망하는 외국 기업들은 쿼터 제한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현지에 공장을 지을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또한 알제리 정부는 외국인 투자유치를 견인하기 위해 국산 차에 대한 외상 구입 허용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할 뿐 아니라 국산 의약품에 대해서는 아예 수입을 금지해 국내 기업들을 보호해주고 있다.
가전제품은 이미 오래전에 프랑스 기업을 중심으로 현지에 합작투자 공장을 건설했거나 많은 외국 가전업체들이 현지 파트너사에 부품을 공급해 자사브랜드 제품을 저가로 쏟아내고 있어 우리나라 가전 기업들의 시장 확대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가전 기업들은 TV를 현지에서 완제품으로 조립해 출시하고 있으며 백색가전까지 현지 생산을 확대할 예정이다. 또한 대도시에 거주 중인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터넷 쇼핑에 서서히 눈을 떠가는 단계인데 장기적으로 인터넷 환경 개선과 신용카드 보급 확산 등 인프라가 갖춰진다면 인구 4,000만명의 알제리가 인터넷 쇼핑의 대형시장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투자를 필요로 하는 호기에 시장을 미리 선점한다면 우리에게도 매우 이득이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자동차의 경우 알제리 정부의 바람과는 달리 SKD 형태(준완성차 수준)로 들여와 현지에서 단순 재조립해 공급하는 경우가 있어, 일부 언론과 관련 부처장관은 이러한 행위가 쿼터를 피하기 위한 꼼수 투자라는 비난을 거세게 제기하고 있다. 알제리 정부는 현지투자 중인 외국 자동차기업들에 현지부품 조달률을 높이기 위해 부품 생산라인을 확대하고 더 많은 현지인력을 채용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알제리에서 자동차 부품을 공급할 수 있는 하청 업체의 기반이 탄탄한 것도 아니고 생산라인을 확대했을 때 여기에 투입할 수 있는 숙련기술자들을 확보하는 것도 아니어서 외국계 자동차회사들의 고민이 날로 깊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현대차는 현재 두 종류의 상용차 이외 여덟 종류의 승용차를 현지에서 조립해 생산하는데 이중 네 종류는 인도 공장에서, 그리고 나머지 종류는 한국에서 공급받고 있다. 알제리에서 운행 중인 현대차의 대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우리나라 대(對)알제리 자동차부품 수출도 증가하고 있다. 인구 4,000만명의 거대한 알제리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기에 현대차도 지금까지 SKD 방식의 부품 공급에서 CKD 방식(현지부품 조달 생산)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가전제품뿐만 아니라 제약·건설중장비·자동차부(용)품·보안용품 등도 알제리 진출 유망품목으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현지투자를 통해 알제리의 수입규제를 회피하면서 양국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