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이라는 커다란 물고기가 있었다. 이놈은 자기보다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고 산다. 계속 잡아먹으면서 몸집을 점점 불린다. 엄청난 사이즈가 되자 곤은 붕이라는 새로 변하고 만다. 붕새는 한 번 날았다 하면 9만리를 날아간다. 그러고는 한 번 쉰다. 뱁새가 참새에게 말한다. “야. 저 붕새라는 놈은 참 이상하구나. 너하고 나하고는 저 옆나무 가지만 날아가도 힘들어서 쉬는데, 쟤는 왜 9만리씩이나 할 일 없이 날아다니냐.” 2,500년 전 중국 철학자 장자의 ‘소요유’편에 나오는 첫 번째 우화다. 자, 장자라는 철학자는 왜 이 곤과 붕의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도대체 그 참뜻은 무엇일까.
학생들에게 이 우화를 들려주면 두 가지 질문이 들어온다. 하나는 “왜 곤은 붕으로 변했는가”다. 장자는 곤이 붕으로 변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다만 변신해야 할 절체절명의 이유를 추정해볼 수 있다. 첫째, 변신하는 이유는 과거에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기 위해서다. 물고기가 할 수 없는 일을 새는 할 수 있다. 둘째, 높은 곳에 올라가서 자신이 있던 곳을 내려다보기 위해서다. GPS 인공위성을 통해 우리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무엇보다도 변신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지속 가능한 생존을 위해서다. 곤이라는 물고기는 자신이 잡아먹을 수 있는 물고기가 없어지면 자신도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또 하나는 “뱁새는 붕새의 높은 뜻을 알 수 있는가”다. 답은 절대로 알 수 없다. 왜. 붕새와 뱁새는 쓰는 언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러기를 필요로 한다. 기러기는 수천㎞를 날아갔다 오는 철새다. 기러기는 붕새가 날아가는 만큼의 거리를 가본 경험이 있어 그 높은 뜻을 이해할 수 있다. 또 기러기는 중간중간 쉬면서 가기 때문에 뱁새가 쓰는 언어도 아는 이중언어 사용자다. 기러기를 매개로 해서만이 붕새와 뱁새는 상호소통에 성공한다.
기러기가 V자 형태로 날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기저항이 약 20% 줄기 때문이다. 그러면 가장 선두에 서서 날아가는 기러기는 어떤 기러기인가. 가장 많이 나오는 답을 소개하면 “힘이 제일 센 기러기” “가장 젊은 기러기” “가장 경험이 많은 기러기” “희생정신이 강한 기러기” “리더십이 탁월한 기러기” 등이다. 다 틀렸다. 정답은 모든 기러기가 번갈아 가면서 예외 없이 선두에 한 번씩 선다. 가다가 지치면 제일 오른쪽 뒤로 간다. 그리고는 한 칸씩 밀려 올라간다. 그러다 지치면 이제 제일 왼쪽 뒤로 간다. 그리고 한 칸씩 밀려 올라간다. 그렇게 수천㎞를 날아간다. 기러기는 ‘기럭기럭’ 울어서 기러기다. 그런데 도대체 왜 우는 것일까. 두 가지 목적이다. 첫 번째는 선두에 서 있는 기러기에게 응원가를 불러주는 거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두 번째는 자신들이 낙오되지 않고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거다. 대단하지 않은가. 기러기한테 배울 게 한두 개가 아니라는 사실이.
붕새와 뱁새를 연결해주는 기러기가 조직 내 곳곳에 포진해 있을 때 그 조직은 혁신에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 혁신은 원래부터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리더가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혁신의 동력은 리더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조직 구성원 모두가 “위에서 알아서 잘하겠지. 난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순간 그 조직은 절대로 혁신에 성공할 수 없다. 모두가 기러기처럼 선두에 나설 수 있는 조직이 돼야 한다.
혁신이 보텀업 방향으로 절대 진행될 수 없는 것은 밑에서 혁신적 제안을 보고하면 보스가 이렇게 말한다. “자네 그거 데이터 있나?” 헉. 데이터라니. 혁신적 제안이란 원래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데이터가 쌓여 있을 리가 없는데….
지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곤처럼 위기가 내다보이는 산업들이 있다. 내연기관 자동차들의 수명이 다 끝나고 전기차로 넘어가면 더 이상 필요없는 부품을 만드는 회사들. 자율자동차가 되면 더 이상 직장을 유지할 수 없는 인력들.
이제 다 기러기가 돼 혁신을 전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