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여명] '회색 코뿔소' 만난 시중은행

김홍길 금융부장

카뱅 등 인터넷은행 무서운 돌풍

혁신 미루다간 한순간에 사라져

투자銀으로 체질개선 서둘러야

김홍길 부장


카카오뱅크의 돌풍이 무섭다.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이면 카카오뱅크가 화제다. 탄핵과 같은 정치적 이슈도 연예나 스포츠 이슈도 아닌데 이렇게 관심을 받기는 이례적이다.

직장 내부에서도 동료 중에 누가 대출한도 최고인지, 대출금리는 얼마인지 저마다 재미삼아 화제에 올리는 것을 보면 카카오뱅크가 초기 흥행에는 성공한 게 틀림없어 보인다. 카카오뱅크에 앞서 영업을 시작한 케이뱅크도 이 같은 흥행은 경험하지 못했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의 신규 고객수를 합치면 200만명이 넘는다. 두 인터넷은행이 본격 영업을 개시한 지 3개월 만에 이룬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속도다. 지난해 은행권 전체의 비대면 계좌개설 건수는 15만건이었다. 비교가 안 될 정도다.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은행은 점포 없이 모바일 기반으로 소비자를 파고드는데 시중은행은 어떤가.

은행의 이익구조를 따지고 보면 여전히 예대마진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다. 국내 4대 은행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 중 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70~80%로 절대적이다. 최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취임과 함께 “예대마진 위주의 영업에 안주하며 가계대출 증가를 통해 이익을 누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할 정도로 은행들은 쉬운 영업에 안주해왔다.


그런데 카카오뱅크가 대출 한도 1억5,000만원에 2%대 금리의 신용대출을 해주면서 은행들이 독점적 지위를 누려온 가계대출 시장에도 지각변동이 생기고 있다. 최근에 만난 한 금융권 사장은 카카오뱅크의 흥행에 “정말 무섭다”고 말했다. 은행뿐만 아니라 대출시장을 놓고 저축은행이나 카드사 등과도 상당히 겹치는데 여전히 기존 금융권은 과거의 프레임에 빠져 여전히 혁신적인 모델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시중은행이 모바일서비스에 집중하지만 ‘카카오뱅크 따라 하기’ 그 이상의 수준이 아니다. 특정 은행의 사례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혁신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낯뜨거운 서비스들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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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이 보유한 점포는 전국적으로 5,100여개에 달하고 임직원 수는 9만1,000여명이다. 이들 인력의 대부분도 투자업무보다 창구에서 단순거래하는 인력이 대부분이다. 반면 카카오뱅크는 점포가 아예 없고 직원 수는 겨우 300명이다.

카카오뱅크가 저금리 전략을 구사하는 상황에서 저금리로 맞불을 놓지 않으면 은행이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다. 은행들이 거대 점포나 인력을 지금처럼 유지하는 한 추가적인 금리 인하 여력은 고사하고 머지않아 가계대출 시장 경쟁에서도 밀릴 수 있다.

외국계인 씨티은행은 창구거래가 전체 거래의 5%도 안 되는 상황에서 40%의 인력을 배치하는 게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해 최근 점포 100개를 통폐합했다. 대신 직원들을 재교육시켜 창구 대신 고액자산가 응대에 집중하도록 하는 새로운 수익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카카오뱅크의 등장으로 은행의 수익구조 자체를 바꾸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시중은행은 정부의 일자리 창출 기조에 감원이 불가피한 점포 폐쇄를 말도 못 꺼내는 상황이고 전년의 2배가 넘는 하반기 공채계획을 발표하는 데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어디서도 고객을 위한 혁신서비스를 내놓았다거나 글로벌 투자은행(IB)들과 겨루기 위한 내부조직 정비에 나섰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삼성이나 현대차 등 대기업처럼 오너가 있는 은행이라면 이 같은 행보를 보이겠느냐는 지적을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세계적인 위기관리 전문가인 미셸 부커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으면서도 쉽게 간과하는 위험 요인을 ‘회색 코뿔소’라고 표현했다.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은행의 등장은 시중은행에 분명 하나의 ‘회색 코뿔소’일지 모른다. 은행이 예대영업만 고집하고 투자은행으로 체질을 개선하지 않으면 과거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을 뜻하는 ‘조상제한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것처럼 우리가 익숙하게 보고 있는 시중은행 간판도 한순간에 훅 사라질 수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은행의 혁신이 필요한 타이밍이다.

김홍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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