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요즘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눈조각전이 열린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일까. ‘기상천외한 전시다’ ‘그것이 가능하느냐’ 등의 반응이 주를 이룰 것이 뻔하다. 그런데 이것이 곧 현실화된다. 오는 12~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크라운해태홀딩스’의 ‘한여름 밤의 눈조각전’이 그것이다. 작품도 현장에서 바로 만들어진다. 무게 1.5톤, 높이 1.5m, 너비 1.1m짜리 눈뭉치 300개가 12일 광화문광장에 도착하면 600명의 직원들이 2인1조로 제각기 눈뭉치 하나씩을 맡아 작품을 만든다. 여름 한복판에서 더위를 가시는 시원한 바캉스를 위해 밤에는 휘황찬란한 조명도 쏜다.
이 하루를 위해 해태제과·크라운제과(264900) 직원들은 지난해 가을부터 기름흙(기름을 섞은 조각용 흙)과 스티로폼으로 연습하며 칼을 갈았다. 작품이 될 눈뭉치도 결전의 날을 위해 모처의 냉동 컨테이너에 고이 ‘모셔뒀다’.
이런 기상천외한 퍼포먼스를 기획한 사람은 다름 아닌 식품 업계의 대표 장수 경영인으로 꼽히는 윤영달(72·사진) 크라운해태홀딩스 회장이다. 이미 남다른 예술경영을 펼쳐오기로 정평이 난 윤 회장과 직원들은 지난 2013년부터 매년 겨울 경기도 양주에서 열리는 눈꽃축제에서 눈조각 전시회를 열었는데 이번에는 광화문광장이라는 더 큰 무대로 옮기고 시기도 여름으로 바꿨다. 워낙 파격적인 퍼포먼스라 회사 측은 기네스북 등재도 준비 중이라는 전언이다.
20여년전 태백서 눈 조각과 인연
2013년부터 연례행사로 자리매김
매년 직원 100명 해외 조각 연수도
◇윤 회장이 말하는 눈조각전은=행사를 기획한 동기가 궁금했다. 경기도 양주시 크라운해태연수원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윤 회장은 이유에 대해 “한여름의 눈조각 파티로 찜통더위 서울시의 온도를 낮추고 싶었다”며 “‘여름에 이거 실화야?’로 회자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한여름에 도심에서 눈조각을 전시한 특이한 사람들이 크라운해태 직원들이더라는 정도로만 기억해주면 충분하다”며 겸손하게 웃었다.
이 행사를 위해 크라운해태홀딩스 직원들은 근무시간 중 짬을 내 조각작업을 준비했다. 윤 회장도 2013년부터 전시회를 열면서 매년 직원 100여명을 삿포로·하얼빈·바젤 등 얼음·눈조각 전시회가 발달한 곳에 보내 공부의 기회로 삼도록 했다. 이렇게 정예 멤버 600명이 모였다.
그는 “조각에 문외한이던 직원들이 몇 년 만에 전문가가 됐다”며 “600명의 직원이 눈조각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업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을 것이다. 직원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소멸의 미’라는 이름으로 가장 멋있게 녹아내린 작품을 만든 직원을 깜짝 선정해 해외 전시회 체험의 기회도 줄 예정이다.
◇ 20여년 태백에서 시작된 눈축제=이 행사의 밑거름인 눈꽃축제를 시작한 동기는 뜻밖에도 소박했다. 윤 회장이 영업조직을 격려하기 위해 강원도 태백에 갔던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침 폭설로 눈이 쌓이면서 과자를 공급한 점포로 가는 길이 막혀 있었고 윤 회장과 직원들은 가게 앞의 눈을 쓸었다. 통로를 확보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한쪽에 쌓인 눈이 문제였다. 그는 “직원들이 그 눈으로 호랑이를 만들었더니 고객 점포의 반응이 좋았다”고 회고하며 “그때 직원들에게 금일봉을 줬는데 그 후로 눈이 올 때마다 전국 영업조직에서 경쟁적으로 눈으로 조각을 만들어서 격려금을 받아가더라”고 웃었다.
기왕 시작한 일이라 좀 더 멋진 작품을 만들고 싶어 회사가 지원하는 전문작가들을 불러 직원들을 교육했고 눈을 활용한 예술작품 만들기는 회사에서 전국적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지난겨울에는 동계올림픽이 개최되는 강원도 평창에서 전시회를 여는 솜씨도 뽐냈다.
눈조각전은 윤 회장의 문화예술을 향한 애정의 한 단면이다. 윤 회장은 크라운해태연수원이 위치한 양주시 송추유원지 인근 약 300만㎡(100만평)에 문화예술 테마파크인 ‘아트밸리’를 조성했다. 윤 회장이 기자에게 준 명함에 새겨진 직함도 ‘아트밸리 회장’이었다. 선친이 30여년 전에 사놓았던 땅을 활용한 아트밸리는 주변 숙박업소 등을 매입해 미술작가들이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차츰 영역을 넓혔다. 지금은 연수원에서 약 20명의 작가가 생활하며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윤 회장은 “아트밸리에 머무는 작가들의 활동을 돕기 위해 서울 25개 구청을 순회하며 ‘찾아가는 야외조각전’을 열어 최대 500개의 조각을 전시할 계획”이라며 “시민들의 예술가적 안목이 높아지면 몇 년 안에 구청으로부터 전시비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아트밸리 세워 미술작가 창작 돕고
예술경영으로 마케팅·메세나 실천
“과자에도 감성 담아 즐거움 전할것”
◇예술경영 새로운 지평 열다=국악계에서도 윤 회장은 메세나를 실천하는 대표적 후원자다. 2004년부터 매년 국내 최대 규모의 퓨전국악공연 ‘창신제’를 주최하는 것을 비롯해 2007년 민간기업 중 처음으로 국악단을 만들기도 했다. 서울남산국악당의 리모델링에도 자금을 댔다. 이런 문화예술 후원활동을 인정받아 지난해에는 한국메세나대회에서 메세나인상을 받기도 했다.
윤 회장은 이런 후원활동을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여러 번 “메세나가 아니라 마케팅”이라고 강조했다. 평소 말하던 이른바 ‘예술경영’의 연장선이라는 것이다. 제과 시장에서 성장을 위한 돌파구로서 윤 회장은 과자라는 물건에 얹을 새로운 요소로 ‘예술’을 선택했다고 여러 차례 언급해왔다. 윤 회장은 “모든 회사가 비슷한 연구를 거쳐 비슷한 기술로 비슷하게 마케팅을 벌이는 마당에 더는 차별화할 수 있을 만한 게 없더라”며 “‘AQ(Artistic Quotient·예술가적 지수)’에 바탕을 둔 예술적 부가가치는 어떤 세계적 경쟁업체도 따라갈 수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윤 회장은 예술경영을 설명하다가 갑자기 탁자 위의 쿠크다스 과자를 뜯어 기자에게 보여줬다. 그의 손은 정확히 겉면에 그려진 물결무늬를 가리켰다. 쿠크다스의 물결무늬는 제품이 출시된 1986년에는 없었다가 중간에 추가됐다. 윤 회장은 “물결무늬가 쿠크다스에 역동성을 불어넣었고 덕분에 매출이 두 배 뛰었다”며 “이때부터 예술적 감성이 경쟁력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예술경영 기조를 결정한 힌트가 여기에 숨겨 있었다.
윤 회장은 “예술경영의 성과가 곧 긍정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예술경영으로 감성을 배양하지 않았다면 2014년의 ‘허니버터칩’ 같은 센세이션은 불가능했으리라고 힘줘 말했다. 과자를 기쁨과 즐거움을 전하는 매체로 만들고 싶다는 그는 예술로 제품에도 감동을 넣고자 한다. “눈앞의 이익에 대한 계산에만 급급하면 예술경영은 불가능합니다. 예술을 비롯해 고객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 활동을 통해 제과 업계가 꾸준히 살아남을 기초가 중요하지요.”
사진=이호재기자
◇He is…
△1945년 서울 △1964년 서울고 졸업 △1968년 연세대 물리학과 졸업 △1973년 고려대 경영대학원 석사 △1971년 크라운제과 이사 △1973년 한국자동기 대표이사 △1987년 남덕 대표이사 △1995년 크라운제과·크라운스낵 대표이사 사장 △1996년 크라운베이커리 대표이사 △2003년 석탑산업훈장 수훈 △2005년 해태제과식품(101530) 대표이사 회장 △2011년 제20회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수상 △2016년 제17회 한국메세나협회 메세나인상 수상 △2017년 크라운해태홀딩스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