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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증거보다 '국민'에 기댄 특검

한재영 산업부 기자

한재영 산업부 기자한재영 산업부 기자




박영수 특별검사가 지난 7일 이재용 부회장 결심공판에서 읽은 최종 논고는 A4용지 5장(글자 크기 11포인트)이 채 안 된다. ‘세기의 재판’ ‘증거가 차고 넘친다’는 특검의 공언에 비하면 짧다고 느껴질 정도다.

이 논고는 국민으로 시작해 국민으로 끝난다. 특검 논고의 서두 격인 ‘들어가는 글’은 재판부에 대한 의례적인 경의 표시와 함께 ‘수사와 재판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로 시작한다. 논고의 마지막인 ‘결어(結語)’에서도 특검은 ‘이들(피고인)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처벌만이 국격을 높이고 경제 성장과 국민 화합의 든든한 발판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재차 국민을 불러냈다.


특검은 길지 않은 최종 논고에서 총 10차례 국민을 언급했다. 국정농단 사태의 진실을 밝히는 게 ‘국민적 여망’이라는 부분에서라든가 ‘삼성그룹이 국가와 국민을 위하기보다는’ ‘국민들의 힘으로’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국민들의 염원’과 같은 말들이 특검의 논고에 나열됐다. ‘국민과 여론은 나를 지지하고 있다’는 영웅적 심리가 밑바탕에 단단히 깔려 있지 않고는 쉽사리 꺼내 들기 어려운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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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언급한 것 말고도 특검은 논고 곳곳에 정의·역사·국격 등 바라보는 관점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추상적인 개념들을 동원했다. 이 역시 정의와 역사·국격이 특검의 편이라는 확신이 없고서는 선택하기 어려운 단어들이다. “특검 논고가 직접적 증거 중심보다는 ‘그럴 것이다’라는 식의 추정을 통한 여론몰이 중심으로 흘러갔다”는 비판이 법조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특검의 전략을 살펴보면 삼성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기보다 국민 앞에 발가벗겨 여론 재판에서 승부를 보려는 것 같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재판부를 향해서 ‘국민은 내 편’이라며 여론을 등에 업고 유죄 선고를 압박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철저히 증거와 법리 중심으로 진행돼야 할 형사 재판에서 특검이 굳이 국민들을 상대로 ‘감사의 말씀을’ 올릴 필요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특검이 논고에서 재판부가 피고인들에게 엄벌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꺼내 든 헌법적 가치를 부정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다만 그것이 자신만이 추구하는 고유한 가치인 것처럼 전유하고 이를 내세워 기업을 흔들려는 행위는 여론을 몰아가기 위한 정치적 행위에 불과하다. 이 같은 행위가 재판부의 냉정한 판결을 조금이라도 방해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는 비겁해 보이기까지 하다. 특검은 논고 도입부에 “법률가로서 품격을 지키면서 (중략) 공소 유지에 최선을 다했다”고 썼다. 특검은 그들이 밝힌 대로 ‘법률가로서 품격’을 잘 지키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jyhan@sedaily.com

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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