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의 쓰나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업 조직도 혁신돼야 한다. 기존 효율 중심의 수직적 조직은 더 이상 4차 산업혁명의 속도와 복잡성을 감당할 수 없게 됐다. 계획과 통제지향적인 수직조직에서 자율과 평가에 기반을 둔 수평조직으로의 변화가 이미 시작됐다. 4차 산업혁명의 최전선에 있는 기업들의 미래 조직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옛소련의 계획경제가 시장경제와의 경쟁에서 몰락했다. 그런데 계획경제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경제체제와 세상 환경과의 상호관계 문제인 것이다. 세상이 폐쇄적이고 단순할 때는 계획경제가 작동했다. 그러나 세상이 개방적이고 복잡해지면서 사전계획과 통제가 불가능해졌다. 단순 반복되는 환경에서는 기계적 계획과 사전통제가 적절한 국가 경영방식이었다. 그러나 복잡하게 변화하는 환경에서는 유기적 자율과 사후평가가 국가 경영방식이 돼야 한다는 것이 공산주의 계획경제 몰락의 본질적 교훈일 것이다.
그런데 이제 4차 산업혁명에서 국가 차원의 복잡계 환경이 기업 단위에 닥쳐오고 있다. 많은 기업이 열심히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체계적 조직을 구축하고 세밀하게 통제적 목표관리(MBO)를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성과는 나오지 않는다. 사업계획들은 수립 즉시 노후화된다. 역할과 책임에 기반을 둔 체계적 조직들은 상호 간에 벽을 쌓고 외부환경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통제적 목표관리는 하향적 목표설정을 초래해 조직 전체의 진취성을 해친다. 옛소련의 국가계획국이 더욱 정교한 계획을 세우려고 노력할수록 더욱더 경제가 피폐해졌음을 기억하자. 이제는 조직의 패러다임 자체를 복잡계 환경에 맞도록 혁신해야 한다는 의미다.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데 가장 성공한 조직은 생명체다. 개방성·분권화·자율성·통합성 등의 상호모순적 명제를 극복하는 것이 생명현상이다. 생명현상은 성장과 분배, 효율과 혁신, 주주와 직원들 같은 양극(兩極) 간 대립이 태극(太極)의 상생으로 순환될 때 발생한다. 생명은 모순의 극복이다. 반복성을 뒷받침하는 효율과 변화를 촉발하는 혁신이 생명조직에서 창발하는 것이다. 이제 기업 조직은 계획과 통제의 기계 조직에서 자율과 평가의 생명 조직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이 기업에 던지는 화두일 것이다.
필자의 졸저 ‘한경영(1997)’에서 이러한 생명 조직이 자기조직화 과정을 거쳐 발현된다고 제시했다. 자기조직화란 복잡계가 스스로 질서화되고 조직화돼가는 변화다. 예를 들면, 내 몸에 있는 60조개 세포들은 한 개의 수정란으로부터 아무에게도 지시받지 않고 스스로 내 몸을 형성했다. 자기조직화의 대표인 생명의 발현에는 부분과 전체가 통합되는 ‘홀론(Holon)’ 개념이 전제된다. 우리 몸의 60조개 세포들이 자기조직화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세포들이 나의 전체 DNA 유전정보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기업 조직의 자기조직화에는 인간 DNA와 같은 공유가치가 전제된다. 인간의 정신·신경·육체에 대응하는 가치관(Value), 정보(Information), 이익(Profit)의 3대 요소인 ‘VIP’를 공유가치의 핵심으로 제시한 바 있다. 공유가치가 형성된 기업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자기조직화가 가능해질 수 있다. 자기조직화하는 생명 기업은 사내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혁신과 효율을 선순환시킬 수 있게 된다.
자기조직화를 추구한 기업 메디슨에서는 100명의 기업가가 탄생하고 이 중 17개 기업이 상장까지 한 바 있다. 토니 셰이는 자율적 조직운영으로 신발 온라인 판매회사인 자포스(Zappos)를 성공시켜 아마존에 12억달러에 매각한 바 있다. 이후 홀라크라시(Holacracy)라는 보스가 없는 ‘수평적 조직운영 방식’ 개념을 전파하고 있다. 이제 기업 조직의 일대 혁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