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지난달 ‘군인권기획관(군옴부즈맨)’을 인권위 산하에 설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책임주체나 일정을 정하는 등 제도 마련을 위한 논의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2사단 K일병과 박찬주 육군 제2작전사령관의 공관병 갑질 등 군내 가혹행위가 연이어 드러나는데도 군 당국과 인권위가 제도 마련에 무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서울경제신문이 국방부와 인권위에 군인권기획관 진행상황을 확인한 결과 양자는 의견 조율을 위한 미팅조차 없었고 책임주체도 명확하지 않아 상대 부처가 직제·인원·향후 방향성 등 제도의 밑그림을 전달해 줄 때까지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국방부 관계자는 “(군옴부즈맨은) 군을 감독하는 기관인데 국방부가 인원과 규모를 결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며 “인권위에서 설치하고 운영하는 기구인 만큼 인권위가 주도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의 신설을 적극 지지하고 지원도 할 생각이지만 세부적인 현황이나 규모는 인권위 쪽이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가 지난달 19일 국정운영5개년 과제로 해당 제도를 직접 발표했음에도 행정적 추진 절차는 인권위로 넘긴 것이다.
반면 인권위는 “국정과제는 행정부가 시한을 정해서 그 안에 일을 종료하라는 지침인데 행정부 소속기관이 아닌 인권위가 할 수는 없다”며 “국방부가 책임을 지고 국정과제를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국정과제를 이행하는 추진 부처는 국방부기 때문에 국방부가 실무책임을 지고, 인권위는 필요한 자료나 의견을 주는 협조기관 정도의 역할을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국방부가 옴부즈맨을 부처 내부가 아닌 인권위에 설치한다는 점에서 상호 간 협의가 필요하겠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인 협의를 시작하거나 일정을 조율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군옴부즈맨제도는 군 외부에서 감독관을 채용해 군대 내의 비위행위를 감시하는 제도로, 독일·캐나다·호주 등 다수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다. 국방부도 지난달 감독기구를 인권위에 설치해 군 인권 증진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군 감독 권한을 인권위에 이양하겠다는 의미여서 책임주체를 정하는 등 양 측 간 의견 조율이 특히 필요했던 사안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양자 간 의견 차이가 컸던 만큼 협의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조만간 협의절차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