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2월 서울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제35회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장. 당시 주주총회 의장이던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당신은 주주의 대리인”이라며 호통을 친 이가 있었다. 바로 소액주주를 대표해 주총에 참석했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당시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이다. 그는 불법 정치자금에 연루된 이학수·김인주 등의 재선임 반대 및 징계를 삼성에 요구했다. 소란과 몸싸움 끝에 끌려나가면서 그는 바지가 찢기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재벌에 서슬이 퍼런 ‘저격수’로, 또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악바리’로 20년 가까이 활동했지만 실생활에서의 김 위원장의 성격은 이와 사뭇 거리가 있다. 우선 김 위원장은 커피를 마시고 올드팝을 들으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로맨티스트’다. 특히 올드팝에 대한 애착은 깊다. 그의 휴대폰에 전화를 걸면 들을 수 있는 통화연결음은 3개월에 한 번꼴로 바뀐다. 올해는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시작으로 주다스 프리스트의 ‘비포 더 돈’을 거쳐 8월부터 스팅의 ‘셰이프 오브 마이 하트’가 걸려 있다. 김 위원장은 “그때그때 내 감정이나 심정을 잘 대변하는 올드팝을 선택해 통화연결음으로 해놓는다”고 말했다.
소박함도 김 위원장의 덕목 중 하나다. 이미 그가 청문회 때 들고 나타나 화제가 된 낡은 가방은 유명하다. 대학원 시절부터 30년 넘게 가지고 다녔다는 그 가방은 문재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임명식 때 살펴보면서 더 유명해지기도 했다.
탈권위적인 소탈함에 대한 평가도 높다. 공정위원장 취임 이후 기자단과의 농구시합에 참석해 직원들과 시합을 한 에피소드는 이미 수차례 언론에 오르내렸다. 취임 당시 여타 부처 장관들과 달리 취임사를 손수 써 공정위 직원들을 놀라게 했다. 이후에도 주요 행사나 기자간담회 모두발언을 직접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취임 이후 입에 달고 사는 말도 있다. ‘어쩌다 공무원’의 줄임말인 ‘어공’이다.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는 ‘늘공(늘 공무원)’과 달리 어공인 본인은 소신을 굽히지 않고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