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돌아오는 것은 가족의 외면이라고 울분을 토하는 중년 남성은 그의 억울함에만 집중해 아내와 자식들이 겪었던 억울함이나 슬픔에까지는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억울한 마음은 나만 생기는 게 아닌데도 말이죠.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 역시 억울함으로 압축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지난 12일 토요일 오후 구로도서관에는 강현식(사진) 누다심 심리상댐센터 대표의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 강의 ‘심리학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마지막강의가 열렸다. 고인돌(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은 서울경제신문 부설 백상경제연구원과 서울시교육청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시민과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아카데미로 올해 5회째다.
이날 강의에서 강 대표는 ‘억울함이 아버지와 아들 간에 그림자를 드리우다-영조와 사도세자’라는 주제로 역사적 비극을 불러일으킨 심리적 갈등에 대해서 설명하고 뒤이어 갈등을 풀어나갈 수 있는 소통방법을 소개했다. 강 대표는 “영조는 형님이었던 경종이 죽고 나서 왕위에 올랐지만, 자신이 형님을 죽였다는 주변의 말에 늘 억울함이 마음 속에 남아있었다”면서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은 사도세자 역시 자신을 따라다니는 소문을 듣고 역정을 내던 아버지 영조에 대한 억울함이 깊었다”고 역사의 기록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는 이어 “억울함이란 심리적 기저는 다른 사람에 의해 자신이 평가받는 즉, 남이 보는 내가 중요한 동양사회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것”이라면서 “남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면 억울한 일이 별로 없지만, 상대방에게 인정받아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생각이 깊어진다면 내가 하지 않은 일이 소문으로 부풀려지는 상황을 견디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화증을 앓고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던 사도세자는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자 했지만, 부정당한다는 판단에 비정상적인 행동이 극단에 이르렀다는 것. 강 대표는 칼 융의 ‘그림자’이론을 내세워 역사적 비극을 정리했다. 칼 융의 그림자 이론은 의식적인 자아 자체가 식별할 수 없는 성격의 무의식적 측면으로 대개 부정적인 면을 설명한다. 그는 “영조가 며느리 현빈 조씨의 조문 중에 51세 연하의 후궁을 들여 가례를 올리는 모습에 사도세자가 격분하고 심리적인 대결양상을 벌이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미워하는 상대방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이라면서 “미운 상대에게서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했을 때는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8일 만에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국본을 없애는 일인데, 이는 왕조시대에는 상상조차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조가 이를 단행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시작한 강의는 어느새 현재로 돌아와 벌어지는 심리적 갈등을 설명하고 있었다. 가족 간, 직장 동료간에 벌어지는 심리적인 갈등의 바닥에 억울함이 깔려있는지를 살펴보라는 것. 강 대표는 “내가 누구로 인해 억울하다고 느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상대방도 억울한 점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혹시 주변에 주는 것 없이 미운사람이 있다면 그림자 이론을 적용해보면 답이 나올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만이 방법이라면서 “우리는 어린시절부터 각자의 소통방법을 갖고 있어서 소통이 쉽지는 않다”면서 “하지만 내가 이렇게 억울한데 상대방에게 혹시 억울하게 만든 것은 없는지 돌아보면 자신의 억울함이 다소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강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힐링하는 마음으로 강의를 마쳤다.
한편, 생애 주기별 인문학 프로그램 고인돌(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 산하 21개 도서관과 30여개 중고등학교를 찾아가 생활 속에서 발견하는 다양한 주제를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풀어내는 강좌를 오는 12월까지 개설해 나갈 예정이다./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