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지난 2009년부터 연극 ‘마라, 사드’ ‘오이디푸스왕’‘소설처럼’‘그 사람의 눈물’‘하늘위에 둥둥 태양을 들고’‘아침드라마’‘잠못드는밤은없다’‘유령소나타’ ‘색다른 이야기 읽기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 등 다수의 대학로 연극 무대로 관객을 만났다. 영화 ‘집으로 가는 길’ ‘타짜 2’ ‘궁합’ 등에도 출연한 영화 배우이기도 하다.
김주헌은 마약과도 같은 환상의 대학로 배우 생활 5년을 보낸 뒤, 돌연 대학로를 떠났다. 3년간 방황의 시절을 보낸 뒤 다시 행복한 배우로 돌아온 김주헌은 ‘넌 그냥 배우지. 아무것도 아니란 걸’ 깨닫고 돌아왔다고 했다. 연극 속에서만 사는 게 아닌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는 배우 김주헌과의 인터뷰는 생생한 삶의 냄새가 가득했다.
오는 9월엔 인간의 본질적인 심리와 욕망에 대해 심도 있게 접근한 연극 ‘엠. 버터플라이’(M. Butterfly)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다음은 배우 김주헌과의 일문 일답이다.
Q. 대학로 연극을 보면서 늘 궁금했던 배우 중 한 명이다. 극단 골목길에서 연극을 시작했다.
▶ 서울예전을 다녔는데 학교 다닐 땐 연극 작업을 거의 하지 않았어요. 영화 수업쪽에 더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심재현 배우랑 학교 연극 작업을 하고 있는데 박근형 선생님이 보러오셨어요. 당시만 해도 전 박근형 교수님이 그 분인지 알아차리지도 못한 상태였어요. 저에게 ‘연극 보러 올래?’란 말만 하셨거든요. 재현 배우가 “극단 골목길 박근형 선배이다”는 말을 듣고 알아차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극단 골목길 연극을 보러 갔고, 당시 서울시극단에서 박근형 연출님이 올린 ‘마라, 사드’에 합류하게 됐어요. 너무 자유롭게 했던 기억이 나요. 너네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거든요. 동선에서 벗어나지 않게 매회 다르게 뛰어다니면서 했어요. 그게 인연이 돼서 골목길 작업을 하게 됐어요.
Q. 2010년 한 ‘오이디푸스 왕’ 도 인상적이었다. 박근형 연출이 어떤 이야기들을 많이 해 줬나.
▶‘오이디푸스 왕’은 정말 힘들게 연습했어요. 24시간 거의 연습실에서 살았는데도 매번 혼나기 일쑤였어요. 몸은 뻣뻣하지 소리만 컸거든요. 화술이 안 된다고 엄청 혼났어요.
Q. 약 5~6년간 극단 골목길 작업을 쭉 했다. 박근형 연출과는 애증의 관계였을 듯 싶다.
▶박근형 선생님이 절 ‘톡’ 건들면 무너지는 부분이 많았어요. 같이 소주 마시면서 살아왔던 이야기를 하다보면 눈물이 막 나와서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연출자들을 100프로 믿으면 어떠한 마법도 다 일어날 수 있다고. 연출자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배우가 잘 캐치해내면 작품을 올릴 수 있어요. 그와 반대이면 작품을 무너뜨릴 수 있는거구요.
Q. 2014년 극단 골목길에서 나왔다. 심경의 변화가 생긴건가.
▶ 극단 골목길에서 나온 건 한 가지 이유만이 아닌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었어요. 개인적으로도 힘들었던 시기이기도 했어요. 연극이 너무 싫었던 순간이었어요. 술이 취해서 그런게 아니라 구질 구질한 연극인들에게 화가 나고, 저를 포함한 연극인들을 건드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사춘기 소년의 반항심. 그런 느낌이었어요.
흔히 연극이 가진 시대정신을 이야기하는데, 시대와 함께 해야 하는 연극 배우인 제가 사는 것과 동떨어져있다는 것 때문에 많이 괴로웠어요. 많이 지쳐있었던 것 같아요.
Q. 한동안 김주헌 배우가 출연하는 대학로 연극을 보기 힘들었다. 이후 2017년 서울시극단의 ‘왕위주장자들’로 다시 무대에 올랐다.
▶‘왕위주장자들’ 공연을 하면서 무대가 되게 무섭고, 두렵다는 걸 느꼈어요. 전에 골목길 작업을 할 땐 무서운 건 없었거든요. 그동안 제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없어졌나봐요.
Q. 80년생으로 나이 40이 멀지 않았다. 무대를 떠나 있던 시간 동안 어떤 생각들을 많이 했나.
▶ ‘넌 그냥 배우지. 아무것도 아니란 걸’ 깨달아야 하는 것 같아요. 연극 배우들도 현실이 얼마나 혹독한지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흔살까지는 이것 저것 일 안 가리고 뭐든 하려고 해요. 지금도 틈틈이 막노동 일을 하고 있어요. 그 일이 나쁜 것도 아니잖아요. 땀 흘려서 돈을 버는 건데.
Q. 연극 속에서만 사는 게 아닌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배우란 생각이 든다.
▶특별히 그렇진 않아요. 이번 ‘엠 나비’ 작품에 캐스팅 되고 나서 리딩 들어갔을 때만해도 막노동 일을 계속 했어요. 그건 있어요. 공사판과 연습실이 다르구나란 느낌이요. 제가 어떤 현장이냐에 따라 성격이 다르게 나오는 것 같아요. 막노동 현장에 가면 ‘아. 더워 죽겠네’라면서 입에 욕을 달고 살아요. 르네를 보여주는 연습실에선 아주 평온하게 지내고 있어요. 가면을 쓰고 있는거죠. 하하.
Q. 배우로서 좀 더 자유로워진 건가.
▶ 쉬면서도 ‘연극을 다시 해야지’ 그 생각은 계속 했어요. 물론 그 때도 ‘뭘 할까?’란 고민은 항상 하는 고민 중 하나였구요. 연극 무대를 떠나서 영화(궁합)도 찍고, 여행도 한 번씩 가고 그렇게 지냈어요. 그 때나 지금이나 고민은 맨날 하죠. 달라진 점이라면 연극도 연극이고, 다른 모든 게 욕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막 바라지 않고 하게 됐다는 점이 달라졌다고 할까요.
Q. 거창한 질문이 될 수도 있지만, 방황의 시기를 보내고 온 뒤 연극의 힘을 다시 믿고 있는건가?
▶너무 좋아요. 개인적으로 인터뷰 하는 건 처음입니다. 사실 이 모든 게 연극의 힘이죠. 연극의 힘이라...그런 표현 보다는 엄살 부리는 사람이 많은데, 감사해야 해요. 쉬다보면 알아요.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고 나면 이전까지 했던 모든 게 ‘행복’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이번 ‘엠, 버터플라이’ 포스터에 제 이름 석자가 들어갔다는 사실만 해도 너무 감사해요. 가문의 영광이죠. 행복해야 돼요.
대본에 그런 대사가 있어요. “오페라 ‘마담 버터플라이’ 에 대한 평론가의 글이 있군요. ..중략.... 과연 버터플라이를 가질 기회가 온다면 마다할 남자가 있을까요 ?“
이 대사를 그대로 우리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에게 적용한다면, “과연 마담 버터플라이 대본을 받으면 마다할 배우가 있을까요 ? 마다할 이유가 없죠. 사실 80프로 이상은 행운이 함께 했기 때문에 이 작품을 하게 됐어요. 나머지 20프로는 이게 운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야해요. ‘내가 잘 할거야’란 부담을 안고 보여주는 게 아닌, 진정성 있게 열심히 하면 돼요. 행복한 마음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Q. ‘엠. 버터플라이’ 이후 차기작이 정해졌나?
▶ 다음 작품으로 정해진 게 있어요. 김진아 연출이랑 함께 하게 됐는데 가제 제목이 너무 길어요. 김지나 연출과의 작업은 처음인데 이방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 분이세요. 이곳에도 저 곳에서 끼지 못하는 이방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작업을 하게 될 듯 해요. ‘엠. 버터플라이’ 공연이 끝나고 차기작은 12월 말부터 공연이 들어갈 듯 해요.
한편, 연극 ‘엠. 버터플라이’는 중국계 미국인 극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의 대표작이다. 1986년 국가 기밀 유출 혐의로 법정에 선 전(前) 프랑스 영사 버나드 브루시코의 충격 실화를 모티브로 무대화한 작품이다.
‘르네 갈리마르’역에 김주헌, 김도빈, ‘송 릴링’역에 장율, 오승훈이 출연하며, 서민성, 권재원, 송영숙, 황만익, 김동현, 김유진, 강다윤이 출연한다. 김동연 연출과 함께 새롭게 돌아온 연극 ‘엠. 버터플라이’는 9월 9일,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개막한다.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