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창업 아이템 부족, 자금 조달 어려움 등을 애로점으로 꼽는다. 만약 어떤 청년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실패의 두려움을 떨쳐낸 뒤 창업 자금 조달까지 성공했는데 규제 때문에 시장 진입조차 하지 못한다면 이보다 억울한 일이 있을까. 한국에서는 이 같은 일이 일반화될 가능성이 높다. 자율차 등 무인이동체, 핀테크, 온오프라인 연계 서비스(O2O), 바이오헬스 등 유망 신산업에 대한 규제장벽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전문 로펌인 테크앤로는 세계 상위 100대 스타트업이 한국에서 사업을 한다면 규제장벽을 경험할 기업이 얼마나 될지 조사했다. 조사 결과 100개 가운데 57곳은 규제로 사업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분석됐다. 우버·에어비앤비 등 13곳은 한국에서는 아예 금지된 사업이며 44곳은 조건부로만 가능했다.
사업 유형별로 사업 차질을 빚는 분야는 핀테크 등이 포함된 금융이 17%, O2O 서비스 17%, 바이오헬스 9%였다. 모두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 산업으로 꼽히는 것들이다.
규제로 인한 신사업 진출 차질은 이미 어느 정도 현실로 벌어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700여 기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47.5%가 ‘지난 1년 사이에 규제 때문에 사업 추진에 차질을 빚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핀테크 기업의 사업 차질 경험률이 70.5%로 가장 높았고 신재생에너지(64.7%), 무인이동체(50.0%), 바이오헬스(43.8%), 정보통신융합(33.6%) 등 분야도 적지 않았다. 서울대 재학생들이 2015년 창업한 모바일 중고차 거래중개업체 ‘헤이딜러’가 규제 탓에 폐업을 겪은 사례도 있다.
정부가 창업 활성화를 외치기 전에 창업 활성화가 절실한 신산업에 대한 규제부터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문재인 정부는 “신산업에 네거티브 규제를 적극 도입하겠다”고 선언하기는 했다. 네거티브 규제는 꼭 필요한 금지사항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허용하는 방식의 규제다. 하지만 지금까지 행보는 말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새 정부의 인수위원회였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민간 전문가는 “국정위 회의 때 네거티브 규제 도입이 중요하다는 얘기는 자주 했는데 이를 실천할 구체적인 액션플랜에 대해서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더라”고 전했다. 지난 6월 말에야 범부처 네거티브 규제개선 태스크포스(TF)를 꾸렸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활동이 보이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신산업과 창업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규제프리존 특별법’ 역시 추진이 지지부진하다. 규제프리존은 지방의 특정 구역을 규제 청정지역으로 지정해 신산업 관련 각종 시도와 실험을 마음껏 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신산업 활성화에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방안이지만 19대·20대 국회에 걸쳐 계류 상태에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국회에서 양극화 해소, 민생 지원 등을 우선 추진하고 있어 아직 규제프리존법 추진에 대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종=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