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첨단 제조·에너지·인프라 등 핵심산업에서의 기술유출을 막기 위해 ‘차이나머니’에 대한 본격적인 규제 강화에 나선다. 미국에 이어 EU도 중국 자본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면서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중국의 입지 위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이 다음달 유럽의회 시정연설에서 외국자본 유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조치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는 EU 기업에 대해 가장 왕성한 투자활동을 벌여온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FT는 “중국은 유럽의 노하우를 사들이면서 자국 시장에 진입하는 EU 투자가들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며 “중국으로 유럽의 핵심기술이 급격히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EU가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EU의 이 같은 움직임은 미 무역대표부(USTR)가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 조사를 개시할 방침으로 알려진 가운데 나온 것으로 미·EU의 협공을 받게 된 중국의 불공정행위에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FT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래 미국이 첫 대중 무역제재에 나서는 것도 EU의 차이나머니 규제와 유사한 의도”라고 설명했다.
유럽 내에서는 중국 국영기업들이 EU 기업을 대거 사냥하는 것과 달리 EU 기업들의 중국 진출을 위한 협상에 별다른 진전이 없다는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독일 싱크탱크인 메르카토르 중국학연구소와 조사회사 로디움그룹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대EU 직접투자액(FDI)은 350억유로(약 47조470억원)로 전년 대비 3분의2 이상 증가했다. 벨기에 소재 싱크탱크인 브뤼겔의 안드레 사피르 수석연구원은 “이번 조치에는 중국 정부와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할 수 있도록 무기를 축적한다는 측면이 있다”고 해석했다.
이번 조치에는 해외자본 유입에 따른 국가안보 위해 여부를 감시하기 위한 일부 EU 국가의 시스템을 다른 회원국들도 도입하도록 권고하는 방안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FT에 따르면 현재 28개 EU 회원국 가운데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해외자본의 M&A에 대한 심사 시스템을 갖춘 곳은 13개국뿐이다. 특히 EU 집행위는 EU로부터 투자 지원을 받은 기업들의 M&A에 적용했던 ‘EU 수준’의 까다로운 투자심사를 도입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집행위가 EU 차원의 규제 시스템 도입을 위한 구속력 있는 법안을 마련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 경우 집행위는 회원국 정부와 유럽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