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소득주도 성장’으로 대표된다. 서민들의 소득을 늘려주면 소비가 늘 것이고 이는 기업 투자와 고용 확대로 이어져 경제 전반이 살아난다는 주장이다. 이전 정부에서는 성장동력 확충을 통한 투자 확대를 우선시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을 통한 고용·소득·소비 증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소득 증대 우선’으로 정책 방향을 틀었다. 새 정부는 이를 ‘경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 실험은 새 정부 출범 후 100일간 속도감 있게 추진됐다. 우선 오는 2018년 최저임금을 시간당 6,470원에서 7,530원으로 대폭 올렸다. 인상률 16.4%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정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비정규직 제로 정책도 주요 추진 사항이다. 연말까지 공공기관 비정규직 근로자 20만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민간 부분에서도 정규직 전환을 적극 유도하기로 했다. 김영주 신임 고용노동부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주당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할 것을 천명하기도 했다.
대기업과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도 예상을 뒤엎고 출범 1년 차에 추진한다. 소득주도 성장에 필요한 재원 마련과 조세 정의 실현을 위해서는 부자 증세를 미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70%가 넘는 높은 국정 지지율도 과감한 증세 정책을 펴는 데 힘이 됐다.
이런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우리 경제·사회의 주요 문제 중 하나인 양극화를 해소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여러 경제 효과를 충분히 분석하지 않은 채 속도전을 펴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식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다가는 여러 부작용이 생기고 소득주도 성장은 실패한 실험으로 끝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구정모 한국경제학회 회장은 “최저임금 정책은 영세·중소업체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지만 오히려 그들의 경영을 악화시켜 고용 위축을 초래할 우려가 크고 근로시간 단축 역시 한국의 경직된 노동환경, 낮은 노동생산성 등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어서 탈이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대부분 재정 확대를 통한 것이어서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도 있다. 일례로 정부는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인건비 지원으로만 3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100대 국정과제에는 없던 예산 지출이다.
무엇보다 미래 성장동력을 키우고 민간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데는 뒷전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구 회장은 “세계 상위 100대 스타트업이 한국에 오면 47곳이 규제 때문에 사업을 제대로 못 한다는 분석이 있다”며 “이런 불합리한 규제 완화나 신산업 육성을 위한 인프라 확충은 출범 100일이 지나도록 보이지를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신성장 동력을 확충하기 위해 범부처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얘기를 정권 초부터 했지만 아직까지 위원회 구성 자체도 못한 상태다.
법인세 인상의 경우 정부가 강조하는 일자리 창출과 상충된다는 지적이 있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는 증세를 초대기업에 한정해서 일자리에 영향이 없다고 하지만 대기업들의 세금 비용 증가로 고용·투자가 줄면 수많은 협력업체도 영향을 받는다”고 꼬집었다. 증세를 결정하는 절차 자체도 문제였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는 지난 6월까지만 해도 법인세, 소득세 명목세율은 없다고 하다가 국회에서 증세 얘기가 갑자기 나오니 일사천리로 증세가 결정됐다”며 “오락가락하는 정책 탓에 기업 현장의 혼란이 극심하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탈(脫)원전 정책도 명분은 좋지만 뒷감당이 안 될 공산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원전을 대체할 신재생에너지 분야 경쟁력이 미미한 상황에서 원전을 다 멈췄다가는 전력수급에 차질이 생기고 미래세대에 부담만 안겨줄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원전은 에너지효율이 가장 좋은 발전 수단이며 우리나라 전체 전력의 30%를 담당하고 있다는 현실을 외면한 채 이상(理想)만 강조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 신고리 5·6호기 등 원전 폐지를 에너지 비전문가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에 맡긴 것은 그 자체로 위법 시비가 일고 있다. /세종=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