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해외칼럼]엄포의 기술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 ‘GPS’ 호스트

"美, 북핵에 핵으로 맞대응할 것"

트럼프식 '공허한 협박'일 뿐

亞서 핵전쟁 전개 가능성 없어

협상·외교로 평화구축 노력 우선

불통때 핵 억지력 확보 힘 합쳐야

파리드 자카리아파리드 자카리아


어떻게 우리가 여기까지 왔을까. 미국이 아시아에서 핵전쟁을 치를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 세계의 눈에는 과연 어떻게 비칠까. 북한은 이미 10년 전부터 핵무기 역량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미국이 부득이 선제공격에 나설 수밖에 없을 정도로 최근 북한의 핵기술이 극적인 개선을 이뤘다는 말인가.

아니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위기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대단히 염려스럽고 위험스러울 정도로 과장됐고 또한 잘못 처리됐다.


트럼프는 처음부터 북한에 강한 이미지를 심어주길 원했다. 트럼프 취임 이후 진지한 정책검토가 나오기 전까지의 몇 개월 동안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북한을 향해 대놓고 ‘전략적 인내’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경고했다. 지난주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북한의 핵무기 잠재력은 ‘용인할 수 없는’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북한이 위협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세계가 일찍이 보지 못했던 화염과 분노를 겪게 될 것”이라며 이들보다 한발 더 나아갔다. 이후 북한의 강경 반응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트럼프는 “내 발언이 충분히 강력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북한의 핵 위협에 핵무기를 동원한 대규모 군사작전으로 맞대응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것이 믿을 만한가. 대답은 또다시 ‘노(No)’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예방적 핵전쟁을 전개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의 발언은 의심할 나위 없이 이 지역의 가장 가까운 우방인 한국과 일본을 뒤흔들었다. 이처럼 공허한 협박과 허튼 수사는 미국의 국격과 국력을 크게 떨어뜨려 차기 행정부를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 뿐이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왜 으름장을 놓는가. 그것이 그의 기본 행동 모드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평생 거창한 약속과 불길한 위협을 되풀이했으나 실천이 따르지 않았다. 사업할 당시에도 그는 언론기관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빈번하게 위협했으나 이를 실행에 옮긴 것은 지난 1984년이 마지막이었다. 그는 결코 법원 밖에서 합의를 보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USA투데이에 따르면 최소한 100차례나 법원 밖 합의로 소송을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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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생에서도 트럼프는 이와 동일한 협박전략을 구사했다. 지난해 대선 당시 그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며, 멕시코에 국경장벽 설치비용을 부담하도록 하고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조사를 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 실행된 것은 단 한 건도 없다. 당선 직후 그는 대만을 중국과 별도의 국가로 인정할 것을 시사했지만 취임한 지 몇 주도 지나지 않아 이를 접었다. 그는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과의 대화 녹취 테이프를 갖고 있음을 내비쳤다. 물론 녹취 테이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핵위기에 대처하는 지금도 트럼프는 쉽사리 들통 날 주장을 편다. 트위터를 통해 그는 대통령으로서 그의 첫 번째 행정명령이 미국이 보유한 핵무기의 ‘현대화’였다고 밝혔다. 실상은 다르다. 그는 단지 의회의 의무적 핵무기 검토 지시를 따른 것뿐이며 아직 검토절차가 완료된 것도 아니다. 북한이 이 정도 절차조차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세계는 이미 핵보유국인 북한과 동거하고 있다. 만약 협상과 외교를 통해 현실을 뒤집을 수 없다면 남은 과제는 강력한 핵 억제 시스템 구축뿐이다. 스탈린의 러시아, 마오쩌둥의 중국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핵 억지력을 제대로 확보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엄포는 오판의 위험을 높이거나 말과 행동이 맞부딪히며 증폭되는 상승효과를 불러일으킨다. 틸러슨 장관은 9일 “미국민은 편하게 밤잠을 이뤄야 하며, 특히 지난 며칠간 이어진 거친 발언에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는 평범한 말이 아니다. 아마도 유례없는 발언일 것이다. 국무장관은 미국인과 세계를 향해 북한 독재자의 말이 아니라 그의 상사인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무시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의 일생에 걸쳐 그의 측근들이 해온 일이기도 하다. 그들은 트럼프를 이끌어온 만트라(mantra·주문)가 ‘거래의 기술(art of the deal)’이 아니라 ‘엄포의 기술(art of the bluff)’이었음을 안다.

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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