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용으로 집을 사려고 하는데 살기 좋으면서도 나중에 가격이 오를 만한 곳 없을까?”
정부가 강도 높은 8·2부동산대책을 내놓은 후 무주택자인 지인마다 하는 말이다. 집이 한 채밖에 없으면 집값이 아무리 올라도 팔기 전까지는 의미가 없다. 하지만 ‘사람 일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이왕이면 집값이 더 오르기를 바란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파트는 ‘돈’이 아니라 ‘집’”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집 한 채 없는 일반인들조차 ‘시세 차익’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국민들은 아파트 매매로 시세 차익을 거두는 데 익숙해져왔다. 한 푼 두 푼 모으고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가 몇 년이 지나 아파트값이 오르면 팔고 더 넓은 평수로 이사하면서 부를 증식했다. 정부는 경기가 꺾일 때마다 부동산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부양책을 펴며 집값을 받쳐줬다.
다주택자들이 늘어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집값이 계속 상승해왔고 주택 보유세 부담은 적었으며 임대소득 과세망은 느슨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주택을 2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는 지난 2015년 현재 187만9,000명, 주택 보유자 중 다주택자의 비중은 14.4%로 갈수록 늘고 있다. 정부 국무위원 및 고위 공직자의 상당수가 다주택자일 정도다.
1주택자도 시세 차익을 기대하고, 다주택자가 활개를 치는 환경을 만들어준 정부가 정권이 바뀌자 돌변했다. 특히 다주택자에 대해 집을 팔거나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6억원 초과 아파트는 임대 아파트로 등록할 수도 없어 무조건 팔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 규제로 시장 심리가 위축돼 다주택자들은 집을 팔려고 해도 매수자가 없어 팔 방도가 없다고 토로한다.
다주택자가 내놓은 집은 대부분 세입자가 있는 집이다. 누군가가 이 집을 사려면 전세를 끼고 사야 한다. 8·2대책으로 조정 대상 지역에서 전세를 끼고 집을 사면 양도세 감면이 어려워졌다.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으려면 멀쩡히 잘 살고 있던 기존의 세입자를 내보내고 매수자가 직접 들어가 살아야 한다. 애꿎은 세입자만 피해를 보게 된다. 매매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정부는 무주택자와 서민에게는 대출규제 완화 등 내 집 마련의 기회를 확대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수요자의 기준이 너무 타이트하고 청약가점제 확대는 신혼부부 및 3040세대 실수요자에게 오히려 불리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미 거래 절벽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거래 절벽이 장기화하면 전세난이 심해진다. 이미 일부 지역은 전세가격이 올라가고 있다. 그 피해는 무주택자와 서민층에 고스란히 돌아가게 된다. 다주택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이 해법이 될 수는 없다. 보다 세분화된 계층별 지원 방안과 중장기 주택공급 확대 계획 등이 필요하다. ‘아파트를 사두면 돈이 된다’는 국민의 가치관을 바꾸려면 말이다. nevermin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