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당신에게 2만 명의 손목을 자르고 인두질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 끔찍한 임무를 자신 있게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야기를 바꿔 당신 직장에 직접 고용돼 있는 청소 노동자 200명에게 해고를 통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회사는 그것이 당신의 임무고 성과를 낼 경우 승진을 약속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20명이라면 좀 더 대답이 쉬울까. 2명이라면. 이렇게 숫자를 줄여도 당신이 맡은 임무의 비극의 정도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무고한 사람의 손목 4만 개를 자르는 것만큼이나 선뜻 마음먹을 수 없는, 먹어서도 안 되는 문제라는 얘기다.
여기 22년 만에 완공 후 첫 태양을 맞이할 타지마할 앞에 두 명의 말단 근위병이 보초를 서고 있다. 이들은 가족처럼 진한 우정을 나눈 휴마윤과 바불이다. 근위대장의 아들인 휴마윤이 임무를 따르고 명령에 복종하는데 익숙한 인물이라면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천진난만한 품성의 바불은 작은 일탈을 꿈꾸는 인물이다. 잡담이 금지된 가운데서도 타지마할을 등지고 장난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던 두 사람은 황제 샤자 한이 더 이상 타지마할만큼 아름다운 건축물이 세상에 나오지 않도록 22년간 공사에 참여했던 2만 명의 손목을 자르도록 명령했다는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 그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이들이 말단 근위병인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암전 후 다시 밝아진 무대는 붉은 피가 넘실댄다. 흥건한 피와 널브러진 손목이 암시하듯 2만명의 손목을 잘라내고 인두질을 마친 직후다. 이 끔찍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둘의 태도는 대조적이다.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한 것뿐이라며 불편한 감정을 피하려는 휴마윤과 달리 바불은 2만 명이 자신들을 원망하고 복수할 것이라는 두려움, 세상의 아름다움을 없애버렸다는 괴로움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바그다드 동물원의 뱅갈 호랑이’로 퓰리쳐상 후보에 오른 작가 라지프 조셉의 2015년 작품인 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은 17세기 인도 아그라의 황제인 샤 자한(Shah Jahan)이 그의 아내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타지마할 궁전에 얽힌 전설을 소재로 두 명의 말단 근위병을 무대 전면에 내세워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 한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유대인 학살과 같은 역사 속 악행이 국가에 순응하며 상부의 명령을 따랐던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개념을 그대로 작품에 적용한다면 휴마윤과 바불은 또 다른 아이히만들이다.
다시 또 타지마할을 등지고 보초를 서는 휴마윤의 눈에 호수를 가득 메운 분홍빛 새들의 모습이 보인다. 숨 막히게 아름다운 광경 속에 그는 깨닫는다. 타지마할 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나타나는 것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광기에 사로잡힌 황제의 부당한 명령을 의심 없이 따른 자신의 어리석음을.
매일의 뉴스 속에 우리는 악의 평범성을 목격한다. 임무와 책임, 보상이라는 말이 통용되는 어느 조직이든 조직의 구성원들은 언제든 악의 평범성을 자행할 위험에 놓여있다. 비판적 사고 없이 명령에 복종, 악을 거부할 기회를 놓친 휴마윤과 달리 이 연극을 본 관객들에겐 아직 기회가 있다. 언제나 새로운 세상은 바불처럼 상상하는 능력을 잃지 않는 자들의 손에서 시작됐다. 직시하라, 그리고 생각하라. 이것이 ‘악의 평범성’이 판치는 이 세상에 이 연극이 주는 메시지다. 10월 15일까지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