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이 미국에서 환수했다고 발표한 ‘덕종어보’가 일제강점기인 1924년, 이완용의 아들 이항구에 의해 분실돼 다시 제작한 모조품으로 밝혀졌다. 국립고궁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던 ‘예종어보’ 역시 함께 제작된 재제작품으로 드러났다. 종묘의 어보 관련 공식 기록인 ‘종묘지초교’ ‘책보록’에는 재제작한 사실은 물론 분실됐던 사실조차 기재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어보의 진위를 증명할 두 서적의 신뢰성에 손상을 입은 만큼 막바지 절차에 있던 ‘조선왕실어보’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전수 정밀조사를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덕종어보는 지난 2015년 미국 시애틀미술관으로부터 환수받은 것으로 당시 문화재청은 성종이 1471년에 아버지 덕종을 추존하며 만든 도장이라 밝혔다. 덕종어보가 일제강점기에 다시 만들어진 재제작품으로 밝혀진 만큼 문화재 행정, 연구기관으로서 문화재청의 권위와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립고궁박물관과 문화재청은 지난해 12월 덕종어보와 예종어보가 재제작품인 사실을 알았음에도 이를 밝히지 않아 각계의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7일 ‘조선왕조실록’과 ‘훈민정음 혜례본’의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 지정서 원본을 분실한 데 이은 촌극이다.
김연수 국립고궁박물관장은 “종묘 ‘종묘지초교’와 ‘책보록’의 1924년, 1943년 봉안기록에는 이러한 분실 사실이 전혀 기재돼 있지 않았다”며 “외부 전문가로부터 일제강점기 신문기사에 분실 사실이 게재돼 있다는 제보를 접수하고 비파괴분석을 수행한 결과 덕종어보와 예종어보가 일제강점기에 재제작된 사실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김 관장은 이어 “그럼에도 순종이 살아 있을 때 정식 위안제로 봉안했던 만큼 어보로서의 가치는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묘에서조차) 기록이 누락된 만큼 어보의 진위 여부에 대해 조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기자의 질문에는 “어보의 진위 여부를 전부 다 조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답했다.
혜문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는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올해 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며 “문화재청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일제강점기 ‘종묘지초교’와 ‘책보록’ 기록은 전혀 신뢰할 수 없으며 모든 어보를 재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유일한 기록이 신문 기사뿐인데 이조차도 1920년대의 신문인 만큼 태평양전쟁이 진행돼 언론탄압이 일어났던 1940년대 잃어버렸다면 신문에 게재조차 되지 못했을 것”이라며 “환수받은 어보가 아니라 국립고궁박물관에 멀쩡하게 보관되고 있던 어보조차 모조품으로 드러났으니 유네스코 등재 절차 역시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