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53·사진)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전 세계 유전자가위 연구자들 사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유명인사다. ‘네이처’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 ‘셀 스템셀’ ‘지놈 리서치’ 등 기초과학·바이오 분야의 내로라하는 저널들이 그가 저자로 참여한 논문을 경쟁적으로 싣고 있을 정도다. 그가 지난 1999년 창업한 바이오 벤처 툴젠도 며칠 전 세계 1위 종자 기업인 몬산토에 3세대 유전자가위(크리스퍼 Cas9) 원천특허 기술에 대한 비독점적 사용권을 주고 기술료 등을 받기로 하는 계약을 맺는 쾌거를 이뤘다.
김 단장은 지난 3일 ‘유전 질환의 대물림’에 마침표를 찍을 업적으로 평가 받는 연구 결과를 ‘네이처’에 발표했다.
“선천적으로 좌심실 벽이 두꺼워져 젊은 나이에 돌연사를 일으키는 비후성 심근증 변이 유전자를 가진 남성의 정자와 3세대 유전자가위(크리스퍼 Cas9)를 정상인 난자에 동시 주입해 변이 부위를 잘라냈던 거죠.”
32억 염기쌍 중 한 군데만 정확하게 잘랐으니 정확도가 로또 1등 당첨 확률(약 815만분의1)보다 393배나 높은 셈이다. 변이 부위가 잘린 정자의 유전자는 정상 난자의 유전자와 만나 자연적으로 교정됐다.
“비후성 심근증 변이 유전자가 아빠에게만 있을 경우 자녀에게 유전될 확률이 50%인데 이번 유전자 교정으로 27.6%로 낮췄어요. 착상 전 유전자 검사와 함께 사용해서 착상에 적합한 배아의 비율을 높이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김 단장은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 교수팀과 배아 유전자 교정 연구를 같이 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그쪽에서 먼저 공동연구를 제안했다”며 “유전자가위의 정확도와 표적이탈 여부를 검증하는 ‘절단 유전체 시퀀싱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단장은 유전자 교정 기술의 미래에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
“(선발·교잡·돌연변이법 등을 이용해 새로운 작물·가축 품종을 만들거나 개량하는) 기존의 육종(育種) 방식은 유전자를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건드리는 블랙박스나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유전자가위 기술 등의 발달로 이제 인간은 동식물과 인간의 진화 방향까지 결정할 수 있는 유전자의 주인이 돼가고 있어요. 유전자가위는 인류에 불·전기 못지않은 막강한 도구가 될 겁니다.”
우리나라는 미국·영국 등과 함께 기초연구 분야에서 유전자가위 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원천특허와 후속 특허를 출원했거나 보유한 김 단장과 코넥스 상장기업 툴젠의 힘이다.
김 단장과 유전체교정연구단 연구팀에는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수두룩하다. 김 단장은 서울대 화학부 교수로 있던 2012년 크리스퍼 Cas9 유전자가위로 인간배양세포에서 유전자 교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입증했다.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 특허를 출원해 지난해 우리나라와 호주에서 등록됐다. 미국에서 특허를 선점한 MIT·하버드대(브로드연구소) 등과 원천특허 경쟁을 벌이고 있다. 원천특허의 핵심은 인간세포를 포함한 진핵세포의 유전자 교정방법이다. 이후 정확도 향상 등 유전자가위 개선에 대한 특허들을 속속 출원해왔다.
2015년에는 유전자가위로 벼·담배·상추 등 농작물 유전자의 특정 부위를 잘라내 종자를 개량하는 데 성공했다. 외부 DNA를 끼워 넣으면 유전자변형작물(GMO)로 분류돼 상당한 규제를 받게 되는데 이를 피하면서도 유전자 맞춤 교정을 할 수 있는 길을 낸 것이다. 올해는 유전자가위로 유전병·암이 아닌 퇴행성 황반변성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김정훈 서울대병원 교수팀과 공동으로 개발했다. 생쥐의 안구에 유전자가위를 주입해 황반변성의 원인이 되는 신생혈관 생성을 억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유전자가위는 유전정보가 담긴 DNA 중 잘라낼 부위, 즉 표적을 탐지하고 안내하는 부분(가이드 RNA)과 표적을 자르는 효소(Cas9·Cpf1 등)로 구성된다. 자르는 유전자 부위는 가이드 RNA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의 유전자는 아데닌(A)·구아닌(G)·시토신(C)·티민(T)이라는 네 종류의 염기가 일정한 순서로 늘어서 있다. 1만여 유전 질환은 이 중 일부의 배열순서가 정상인과 다르거나 특정 염기가 빠진 채 자녀에게 유전돼 발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전자 변이는 오랜 기간 담배를 피운 사람의 폐 주변 세포에서처럼 생활습관 등에 의해 후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유전자가위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우선 난치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표적 단백질에 달라붙어 그 기능을 억제하는 기존의 항체치료제나 합성의약품은 치료 효과가 한시적이죠. 반면 질병 유발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잘라내면 질병을 근본적으로 차단·치료할 수 있어요.”
맞춤형 농작물·가축 품종을 신속·정확하게 개발할 수도 있다. 곰팡이균 때문에 멸종위기가 째깍째깍 다가오고 있는 캐번디시 바나나, 잘 짓무르는 상추·버섯, 독성이 있어 날로 먹지 못하는 카사바, 조류독감(AI)·구제역 등에 잘 걸리는 닭·돼지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특히 외부 유전자를 끼워 넣지 않아 유전자변형(GM) 작물·가축에 적용되는 규제를 피할 수 있다.
글로벌 제약사와 바이오 벤처, 세계 1위 종자 기업인 미국의 몬산토 등과 의료계가 3세대 유전자가위 원천특허 또는 특허 사용권 확보와 연구에 열을 올리는 까닭이다.
“1세대 유전자가위는 하나를 만드는 데 6개월 이상 걸리는 등 효율이 떨어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3세대 가위는 하루 만에 만들 수도 있고 정확도 역시 뛰어납니다. 1~3세대 유전자가위 치료제에 대한 임상시험도 미국 9건, 중국 5건, 영국 3건이 진행 중이죠.”
유전자가위로 질병을 어떻게 치료할까.
“유전자가위로 변이 부위를 잘라내면 세포 내 자연적인 DNA 수선과정을 거쳐 염기배열이 정상화되죠. 자르지 않고 특정 염기를 다른 염기로 바꾸거나 특정 유전자 기능을 없애는 것도 가능해요. 정자·난자나 수정란 등에 유전자가위를 주입하면 유전 질환의 대물림을 끊어버릴 수도 있지요.”
구체적으로는 체외·체내·배아 유전자 교정 방법을 쓴다. 체외 교정은 체세포를 꺼내 표적 유전자를 잘라낸 뒤 인체로 넣어준다. 미국(골수종·흑색종), 중국(폐암) 등에서 진행 중인 임상시험이 이런 방식이다. 암 환자의 혈액 내 면역세포인 T세포를 유전자 변형해 암세포 살상력을 높일 수 있는데 여기에 유전자가위 기술을 적용해 다수의 환자에게 쓸 수 있게 만든 항암제다. 에이즈 바이러스(HIV)의 혈액 내 T세포 침투 통로가 되는 수용체(CCR5)를 망가뜨리는 유전자가위는 근본적인 에이즈 치료제가 될 수 있다. 이곳이 망가진 백인들은 HIV에 감염되지 않는다. 체내 교정은 유전자가위를 인체에 직접 넣어줘 실명을 초래하는 퇴행성 황반변성, 혈우병, 고형암 등 치료에 활용된다. 배아 교정은 유전 질환의 대물림 방지, 불임 원인 규명과 치료법 개발 등에 쓰인다.
김 단장은 서울대 화학과(83학번), 미국 위스콘신대 생화학 박사를 거쳐 1994년 MIT 하워드휴스의학연구소의 칼 파보 교수 밑에서 박사후과정을 보내면서 유전자가위와 인연을 맺었다. 지금까지 24년간 1~3세대 가위를 섭렵하며 외길을 걸어왔다.
귀국 후 민간 생명과학연구소에 1년 반 정도 다니던 그는 1999년 툴젠을 창업해 대표와 연구소장으로 연구에 매진했다. 그러다 2005년 서울대 화학부 교수로, 2014년 유전체교정연구단장으로 변신했다.
“20년 전쯤만 해도 대학의 연구 여건은 무척 안 좋았어요. 그래서 창업을 선택했죠. 하지만 1~2세대 유전자가위는 국내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어요. 더 많은 연구비와 연구인력이 있는 대학·연구단으로 자리를 옮긴 이유죠.”
연구단은 박사 연구원과 석·박사 통합과정 대학원생 등 약 30명의 연구인력을 두고 있다. 연구단의 예산(인건비 포함)은 설립 첫해인 2014년 45억원, 2015년 93억원, 지난해 80억원, 올해 75억원으로 4년간 293억원에 이른다. 지금은 서울대 화학부 건물을 빌려 쓰고 있지만 내년 3월 대전 엑스포공원 자리에 신축 중인 기초과학연구원으로 둥지를 옮긴다. /임웅재 선임기자 jaelim@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He is
△1964년 수원
△서울대 화학 학사(1987), 생화학 석사(1989), 위스콘신대 생화학 박사(1994)
△1994~1997년 MIT 하워드휴스의학연구소 연구원
△1997~1999년 삼성생명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1999~2005년 툴젠 대표·연구소장
△2005~2014년 서울대 화학부 교수(현 겸임교수)
△2014년~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