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의 큰손인 연기금이 올 들어 주식을 사들이는 지수대를 계단식으로 높여가고 있어 주목된다. 시장에서는 연기금이 최근 국내 주식 시장에 쏟아진 외국인의 매도 물량을 받아내며 증시 안전판 역할을 한 데 이어 앞으로 코스피의 상승 전환을 이끄는 매수 세력으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8일 서울경제신문이 올 들어 연기금이 유가증권 시장에서 3거래일 연속 이상 순매수한 총 11차례의 구간을 분석한 결과 연기금이 주식을 순매수한 지수대는 연초 대비 400포인트 가까이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연기금은 지수가 오를 때 팔고 내릴 때 사들이는 기존의 매매 패턴을 유지하면서도 증시 눈높이는 단계적으로 높여갔다.
연기금은 지난 1월25일부터 2월1일까지 1,494억원어치를 순매수했는데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하단은 2,066.94포인트, 상단은 2,080.48포인트였다. 연기금의 순매수 지수레벨은 3월22~24일에 2,168.30~2,172.72포인트로 약 100포인트 올랐고 4월20~28일(2,149.15~2,209.46), 5월19일~24일(2,288.48~2,317.34), 7월10~18일(2,382.10~2,426.04), 8월8~14일(2,394.73~2,334.22) 등 계단식 상승을 이어갔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연기금은 주로 고가에서 지수를 끌어올리기보다 지수가 급락할 때 하방 경직성을 강화해주는 역할을 해왔다”며 “큰 틀에서 매매 패턴이 변한 것은 아니지만 주식을 순매수하는 지수 레벨이 올라갔다는 점은 과거와 확연히 다른 현상”이라고 말했다.
하반기 매수 여력이 충분한 연기금이 증시 눈높이를 높이면서 시장은 연기금이 외국인의 수급 공백을 메우며 증시 상승을 이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기금은 북한과 미국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여파로 코스피가 급락했던 지난 8월11일에 5,876억원어치의 국내 주식을 사들이며 지수 하락을 막았다. 이 기간 연기금이 순매수한 상위 종목은 삼성전자(4,989억원), SK하이닉스(1,492억원), LG전자(659억원) 등 정보기술(IT) 대형주다. 외국인이 집중 매도한 이들 종목의 물량을 받아낸 연기금은 증시 안전판 역할을 톡톡히 했다.
통상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의 주식 투자 집행이 하반기에 집중됐다는 점도 증시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감을 키운다. 최근 5년간 연기금이 국내 주식을 사들인 연평균 금액은 6조4,000억원 수준이다. 이날까지 연기금의 연간 누적 순매수 금액이 1조3,654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하반기에 약 5조원의 매수 여력이 있는 셈이다. 정다이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평가차익까지 고려한 매수 여력은 3조6,000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