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자유의 상징

조은정 한남대 교수

미술사학자 조은정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에서 어린이의 모습을 한 에이아이(AI)가 인간 엄마의 머리카락을 호주머니에 담은 채 발견된 곳은 바닷물에 잠긴 ‘자유의 여신상’ 아래였다. 인간과 유인원의 지배관계를 다룬 아주 오래된 영화에서는 우주에서 지구로 돌아온 조종사가 모래 바닥에서 무너져가는 ‘자유의 여신상’을 발견하고서야 현실을 받아들이며 낙담하는 장면이 나온다. 미국의 뉴욕이라는 특정 지역에 소재한 동상 하나가 어떻게 지구 전체를 상징할 수 있을까.


자유의 여신상의 본래 이름은 ‘세계를 밝히는 자유(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이다. 각종 재난영화에서 인류의 생존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알려졌듯 이 동상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가 마련한 선물이었다. 지난 1865년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하자 프랑스 역사학자 에두아르 라블라예가 “미국의 독립기념물은 프랑스와 공동으로 세워야 한다”고 한 연설에서부터 기념상 제작운동이 시작된 것이라고도 한다. 프랑스혁명과 미국의 독립, 그리고 남북전쟁에서 북군연합의 승리까지 이 모두를 ‘자유를 위한 투쟁’이라는 역사로서 위치시킨 것이다. 자유의 여신상 받침대 부분에 새겨진 “자유롭게 숨쉬기 갈망해 얼싸안은 무리들”이라는 문구는 이 동상이 이민자의 나라, 미국을 상징하는 이유를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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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프랑스에서 제작된 동상이 214개 조각으로 나뉘어 미국을 향한 배에 실릴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에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에 한 인물의 동상이 세워졌다. 동상의 주인공은 로버트 리 장군. 남북전쟁 당시 남군총사령관이었다. 그는 두 번의 큰 승리를 거뒀지만 결국 패장이 됐고 전쟁이 끝나자 워싱턴칼리지 학장이 돼 전후 복구에 필요한 인재양성에 힘썼다. 남군 최고사령관이었음에도 그는 “나는 연방을 절대적으로 지지하지만 내 친척, 내 자식, 내 가정에 대항하는 편에 설 수 없었다”고 했고 백인의 도덕심을 해친다는 이유로 노예제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의 사후에 각종 기념물과 동상이 세워졌고 뉴올리언스 도로 중앙의 높은 대좌 위에 선 동상은 리 장군 최초의 기념물이었다. 그로부터 133년이 지나 남부연합 기념물들이 노예제와 불평등을 상징하는 조형물로 인식돼 철거되던 중 뉴올리언스 도로의 리 장군 동상도 철거됐다. 그러나 샬러츠빌의 리 장군 동상은 새로운 사건의 도화선이 됐다. 극단적인 KKK 회원들이 철거반대 성명을 냈고 소송에 의한 6개월간 철거금지령 사이에 철거 지지자와 반대자들 간 유혈사태가 발생해 급기야 비상사태 선포까지 이어졌다.

역사수정주의 시대에 애초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국가의 힘, 인종차별의 상징이 된 미국의 동상들을 바라보며 지금도 어디선가 세워지고 있을 동상이 맞게 될 미래의 사건을 가늠한다는 것이 지나친 일은 아닐 것이다. 자유의 상징이 거대 권력의 상징이 된 지금, 퇴색하는 역사적 의미를 어떻게 봐야 할까. /한남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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