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세금 해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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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이 보병 2만명과 기병 6,000명을 데리고 알프스를 넘은 뒤 로마와의 첫 대결을 앞두고 병사들 앞에서 연설을 했다. 한니발은 물러설 곳이 없다며 전쟁에서 이긴다면 원하는 지역의 땅을 병사들에게 주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병사 본인은 물론 자식 대에 이르기까지 세금을 평생 면제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로마군과의 일전을 앞두고 용병 출신의 병사들에게 세금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파격적이고 대담한 공약을 내건 셈이다.


중국 강희제는 1711년 황제 즉위 50년을 맞아 획기적인 세금면제정책을 내놓았다. 1712년부터 출생한 백성들에게는 당시 보편적인 세금이었던 인두세를 매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라의 수입이 풍부해 앞으로 세금을 동결시킨다는 ‘성세자생인정(盛世滋生人丁)’이었다. 덕분에 소득이 늘어난 백성들의 생활이 윤택해지고 출산율도 높아져 1850년대에 청나라 인구는 4억명을 돌파했다. 물론 과다한 인구 급증이 청나라를 쇠락의 길로 이끌었다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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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가란 통상적으로 세금을 한 푼이라도 더 걷으려고 안간힘을 쓰게 마련이다. 로마 시대의 소변세나 18세기 영국의 모자세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 영국에서는 창문의 개수나 크기에 따라 세금을 매겨 창문을 진흙으로 막거나 없애버리는 황당한 일도 빚어졌다. 이런 세태를 풍자해 미국에서는 ‘세금해방일(Tax Freedom Day)’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1년 중 세금을 내기 위해 일하는 날에서 해방되는 날, 순수하게 자신의 주머니로 소득이 들어오는 반가운 날을 일컫는다.

한국경제연구원이 한국의 조세부담을 조사했더니 고소득 근로자와 저소득 근로자의 세금해방일이 최대 4개월이나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소득층은 1월2일이면 세금에서 해방되지만 5억원 이상의 고소득자는 4월28일로 한참 뒤처진다는 것이다. 면세자 비율이 절반 수준에 이르다 보니 이런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죽음과 세금만큼은 피할 수 없다고 한다. “세금은 국민의 지급능력에 따라 부과돼야 한다”는 애덤 스미스의 조세원칙을 되새길 때다. /정상범 논설위원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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