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군사독재 옹호’ 문학인으로 비판받아온 미당 서정주 시인(1915~2000)의 전집이 20권으로 완간됐다.
은행나무 출판사는 21일 서울 광화문 인근 한 식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당 서정주 전집’이 20권으로 완간됐다고 밝혔다. 2012년 말 작업을 시작, 2015년 미당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1권인 ‘화사집·귀촉도·서정주 시선’으로 출간이 시작된 미당 서정주 전집은 이날 18권 ‘석사 장이소의 산책·영원의 미소’, 19권 ‘김좌진 장군전·우남 이승만전’, 20권 ‘만해 한용운 한시선·석전 박한영 한시선’이 발간되며 마침표를 찍었다.
간행위원장인 이남호 고려대 교수는 미당의 문학에 대해 “언어, 비언어를 통틀어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유산이라 생각한다”며 “그의 문학이 정치적·역사적으로 폄하되는 분위기가 안타깝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이 교수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공산 소련, 스탈린과 흐루쇼프의 독재 정권에 협력해 개인적인 안위를 보장받았던 작곡가)를 언급하며 “예술 그 자체의 위대함을 느끼려는 순수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정치는 짧고 예술은 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당의 정치적·역사적인 과오를 인정하면서도 그의 문학이 ‘한국어로 된 아름다운 예술’인 만큼 전집을 발간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미당이 ‘화사집’ 단 한 권의 시집만 내놓고 요절했다면 그는 민중시인이요, 민족시인으로 남았을 것”이라며 “‘애비는 종이었다’는 문구가 얼마나 도발적인가”고 주장했다. 이어 미셸 푸코의 전기인 ‘푸코의 얼굴들’을 언급하며 “사람은 단순하고 평면적인 게 아니라 복잡하고 자신도 알 수 없는 면이 있는 법”이라며 “자신으로서는 미당이 요절해 단 한권의 별(시집)으로 끝나기보다는, 오욕이 있더라도 여러 별이 모인 성운이 되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다른 편집위원 역시 미당의 과오를 인정했다. 이경철 문학평론가는 “제5공화국에 협력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도 피해갈 수 없다”면서도 “그 사람(미당)이 너무 단순해서 그렇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순진한 개구쟁이 같은 사람이라 정치적으로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며 “제5공화국 협조는 도저히 넘길 수 없는 과오이지만, 이 사람 성격이 비정치적인 사람이라 속고 당한 거라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재웅 동국대 교수 역시 “그동안 미당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며 “미당의 정체를 파악한 후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하는 문화가 생겼으면 한다”고 밝혔다.
전집은 1933년 12월24일 신문사에 발표한 ‘어머니의 부탁’부터 2000년 12월24일 사망할 때까지 67년간의 작품들을 총망라했다. 간행위원장 이남호 고려대 교수를 비롯해 이경철 문학평론가, 윤재웅 동국대 교수, 전옥란 작가, 최현식 인하대 교수가 편집위원으로 참여, 950편에 달하는 시를 수록한 5권의 시집을 포함해 산문, 자서전, 시론, 평전까지 21세기 한국어 문법에 맞도록 8~10차례 교정을 거쳐 수록했다. 편집위원들은 “훗날 미당의 문학을 연구하는 학생들에게 선물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회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