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만 좋다 싶으면 무덤으로 향했다. 추모공원이나 공원묘지, 화장터 등을 돌면서 낡은 조화(造花)를 주워다 모았다. 30년 이상 ‘조국 분단’을 주제로 그림을 그려 온 대표적 민중미술가 송창(65)의 일상이다. 죽은 이를 기리는 꽃들을 수집하는 일은 어쩌면 살아남은 자의 숙명 같은 것이었다. 그가 무덤을 들락이며 꽃을 모은 것은 2010년 경기도 연천군에 자리잡은 등록문화재 제408호 유엔(UN)군 화장장을 다녀온 뒤부터다. 곳곳에 흩뿌려진 조화를 우연히 본 것을 계기로 “죽음의 구조로 끝날 수밖에 없는 전쟁, 분단의 구조가 결국 죽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라지고 잊힌 사람들에게 산 자의 애도를 전하고 싶어서” 꽃을 캔버스로 옮겨놓기 시작했다.
송창의 2010년 이후 신작을 비롯해 구작 대표작 등 39점을 선보이는 개인전 ‘꽃그늘’이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 전관에서 다음 달 24일까지 열린다.
포탄이 떨어진 자리마다 꽃이 피어올랐다. 세 개의 화면을 합친 폭이 379㎝에 이르는 대작 ‘그곳의 봄’은 유엔군 화장터를 가운데 두고 오른쪽에는 참전해 희생한 영국군을 상징하는 레브라도 리트리버가 그리움 가득한 눈으로 이를 바라보고 있다. 화면 왼쪽은 ‘화해’를 꽃말로 가진 하얀 망초꽃이 가득 채우고 있다. 무덤가에 많이 핀다고 알려진 이 꽃은 실제 유엔군 화장터에도 피어있다 한다. 작가는 무덤의 꽃을 캔버스 곳곳에 붙여 위로를 전한다. “전쟁의 풍경 위에 시들지 않는 꽃을 수놓음으로써 아픔을 치유하고자” 했다. 그림은 마치 꽃상여처럼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꽃은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애도이자 산 사람과 죽은 자의 매개체입니다. 꽃은 화려하고 아름다워 축하의 의미도 있지만 어둠과 죽음을 상징하기도 하죠. 우리의 현실도 밝은 면이 있으면 항상 그늘이 존재하기 마련이죠.”
본관 안쪽에 걸린 대작 ‘꿈’은 아직도 전쟁의 상처가 꿈속을 어지럽히는 듯 안타깝다.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였다는 연천군 군남면 남계리의 풍경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강렬한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지난 2015년 북한이 포탄을 쏜 곳 또한 이곳 연천이었다. 작가는 용암이 식으면서 만들어진 주상절리와 끊어진 다리, 그 아래 강바닥에 흩날리는 꽃들을 그렸다.
그는 매일같이 사람이 죽어 나가던 전쟁통, 1952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났다. 조선대를 졸업하고 1979년 상경한 그는 이듬해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군(軍)의 진압이 끝났다는 소식에 새벽 버스를 타고 간 광주의 전남도청 앞에는 첩첩이 수많은 관들이 쌓여있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서울 근교에서 미술교사로 일하던 시절에는 도시화에 밀려난 사람들이 “가난 때문에 쓰레기를 뒤지다 불도저에 치어 죽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다”고도 했다. “군부 정권이 도시개발을 주도하면서 산업화의 그늘이 생기기 시작했다”며 문제의식을 가진 작가는 1980년대 산업화의 뒷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 전시된 1984년작이자 대표작인 ‘난지도-매립지’는 쓰레기 매립지와 고통스러운 군중의 몸부림이 뒤엉켜있다. 도시가 눈부시게 발전할수록 갈 곳 없어진 사람들의 그늘은 더 깊어지고, 고층빌딩이 높아질수록 그 그림자 또한 길어진다. 용광로처럼 들끓는 붉은 쓰레기 더미 너머로 푸른 신도시의 풍경이 멀리, 어렴풋이 보인다. 전시 제목 ‘꽃그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