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에서 가정의 사회·경제·문화적 지위가 자녀의 성적이 미치는 영향이 강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이른바 ‘흙수저 계급론’을 줄이기 위해선 사교육 경감대책 및 사회적 교육 약자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주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23일 한국경제연구원 주최 ‘사회 이동성과 교육해법’ 세미나에서 2000~2015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자료를 토대로 ‘가정 배경과 학력의 상관관계’에 관한 국제 비교 결과를 발표했다. 가정 배경의 척도로는 경제·사회·문화 지위지수(ESCS)가 활용됐다. PISA를 치른 학생의 가정 재원 및 부모 직업·지위·학력 등이 반영된 수치다.
ESCS가 학업성취도평가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영향력계수’를 산출한 결과 2015년 한국의 수학·과학·읽기 3과목 평균 계수는 42.75로 집계됐다. 2000년(21.97)의 거의 두 배에 이른 값이다. 2012년(34.06)보다도 8포인트 넘게 뛰었다. 그만큼 최근 들어 한국에서 집안 배경이 학력과 성적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 것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2015년 기준 한국의 계수(42.75)는 일본(38.70), 홍콩(13.74), 미국(25.98), 영국(34.93), 핀란드(34.60) 등보다 높았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평균(29.66)을 크게 웃돌았다.
일본과 홍콩 등 다른 나라의 경우 5년간 계수 차이가 거의 없는 것에 비해 한국은 최근 급격히 계수(배경의 영향력)가 높아졌다. 가정 배경이 하위 20%에 속하는 학생들의 PISA 평균 점수가 2012년 502점에서 2015년 486점으로 34포인트나 낮아졌다. 이 교수는 이를 한국 교육의 ‘계층 사다리’ 역할이 약해진 것이라 분석했다. 이 교수는 “교육의 계층 사다리 역할이 약해졌지만 ‘수저 계급론’ 주장처럼 해결이 불가능할 만큼 고착화한 것은 아니다”라며 “사교육 경감 정책을 일관적으로 추진하고 학교 현장에서 열악한 가정 학생들의 학력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날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도 “세대 간 교육 대물림이 최근 들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20~69세의 남성을 기준으로 교육수준의 세대 간 상관계수를 분석한 결과 △ 할아버지-아버지 0.656 △ 아버지-본인 0.165 △ 본인-아들 0.398로 집계됐다. 세대 간 교육수준 영향력이 크게 줄었다가 조사 대상자 자녀 세대부터는 다시 커지는 것이다.
김 교수는 “계층 간 교육 격차에는 사교육 투자 차이뿐 아니라 부모의 교육 관여 정도, 양육 관행, 계층 간 커뮤니티 차이 등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그는 교육 격차 완화와 사회 이동성 제고를 위해선 △ 조기 개입을 통한 발달 격차 방지 △ 적극적 발굴·지원을 통한 재능 사장 방지 △ 교육과정 개별화를 통한 성공경로 다양화 △ 위기 청소년 보호를 통한 사회적 배제 예방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조은지 인턴기자 ej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