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기업인 A사는 연내 상장하려던 계획을 잠정 중단하고 당분간 기술 개발에 전념키로 했다. 코스닥 상장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고자 했지만 기술특례상장의 벽에 부딪혀 상장 계획을 무기한 연기한 것이다. A사와 같은 사례가 속출하면서 바이오 기업 사이에서는 기술특례상장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하소연이 흘러 나온다. 당초 제도 도입 취지와 달리 매출 성과를 요구하거나 해외 선진국보다 깐깐한 규제로 인해 상장이 거부되는 상황이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기술특례상장제도로 기업공개(IPO)에 성공한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이 지난 2015년과 2016년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이 한국거래소 자료를 분석한 결과, 기술특례상장기업은 2015년 12곳, 지난해 10곳에 달했지만 올해는 23일 현재 4곳에 그치고 있다. 올 들어 기술특례상장에 성공한 바이오·헬스케어 기업 역시 3곳에 불과하다.
기술특례상장은 기술력이 우수한 기업에 대해 외부 검증기관을 통해 심사한 뒤 수익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상장 기회를 주는 제도로 지난 2005년 도입됐다. 기술특례로 상장하려면 거래소가 지정한 전문평가기관 중 두 곳에 평가를 신청해 모두 BBB등급 이상을 받아야 하고, 이 중 적어도 한 곳에서는 A등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 이후 상장심의위원회를 통과하면 코스닥시장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주로 연구개발(R&D)에 투자를 많이 하는 바이오·헬스케어 업체가 대상이다.
업계에서는 당초 취지와 달리 기술성보다 매출 등 시장성을 요구하고 있다며 볼멘 소리다. 실제로 3차원(3D) 프린팅 기술을 기반으로 조직재생용 생분해성 인공지지체를 제조하는 T사는 기술이 상용화 단계에 진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기술특례상장을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전체 교정기술 특허를 보유한 툴젠은 상장에 두 번이나 실패했다. 당시 특허가 등록되지 않아 불확실성이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됐다. 미국 메사추세츠대학(MIT)의 유전체 교정기술에 대한 특허 무효 심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 기술에 대한 라이선싱을 받은 인텔리아(Intellia)와 에디타스(Editas)이 나스닥 상장에 성공한 미국 사례와는 대조적이다.
전문평가기관의 기술 이해도 편차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임정희 인터베스트 전무는 “일례로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의 경우 정보기술(IT)에 특화돼 있어 바이오에 대한 이해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며 “기관별로 기술에 대한 평가 결과 차이가 커 바이오 벤처기업들이 (평가에) 고충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묵현상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장은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금융당국에서 깐깐하게 접근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미국이나 영국처럼 주가가 1달러 미만으로 한달간 지속시 시장에서 퇴장시키거나 공모가 이하로 주가 하락시 상장 주관사에서 3년간 의무적으로 매수하는 등 사후 단계에서 투자자 보호 조치를 강화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