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산업의 천국으로 불리는 스위스 추크주의 길도 불게로니 경제진흥부 부국장은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두 개의 그래프가 그려진 종이 한 장을 내보였다. “하나는 금의 시세 그래프, 하나는 비트코인입니다. 구분이 되나요?” 가상화폐의 실체를 두고 굳이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가 없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인사청문회에서 “과거 (유럽의) 튤립 투자 광풍처럼 지나갈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가상화폐에 대한 한국과 스위스의 상반된 시각을 보여주는 일화다.
일부에서는 대표적 안전자산인 스위스 프랑보다 오히려 더 안전한 것이 가상화폐라는 주장도 있다. 니콜라스 니클로젠 비트코인 스위스 대표는 “가상화폐 가격 하락으로 자산을 잃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스위스 프랑에 투자하는 것보다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게 안전한 방법”이라며 “법정통화의 경우 중앙발행기관에서 물가 상승률이 2~3% 정도로 유지되도록 개입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가치를 잃어가고 있지만 가상화폐는 (알고리즘에 따라 정해진 만큼 발행해) 인플레이션 우려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스위스의 이 같은 분위기와 달리 국내에서는 가상화폐 투기 문제가 더 부각되고 있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가 단숨에 세계 1위를 기록할 정도로 급성장하면서 ‘정상이 아니다’라는 우려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실제 국내 가상화폐 거래 금액은 코스닥을 넘어섰고 가격도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가격 등락 상하한 폭을 두고 있지 않아 투자보다는 투기를 조장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더구나 국내에서는 가상화폐나 블록체인과 같은 기초기술에 대한 관심보다는 단순 대박을 꿈꾸며 ‘단타(단기매매)’에만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금융당국도 투기과열에 온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실제 금융위원회가 주도하는 ‘가상화폐 제도화 태스크포스(TF)’는 현재 가상화폐 투기와 불법 자금 모집 등 투자 규제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달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 등 사정기관들이 TF에 대거 합류한 것이 이의 방증이다. 이에 따라 블록체인과 가상화폐가 어떻게 금융혁신을 이룰 수 있는지, 국내 금융기관이 혁신에 뒤처지지 않도록 필요한 제도는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는 사이 해외에서는 이미 금융기관이 직접 가상화폐를 취급해 시장에 안착한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스위스 팔콘프라이빗뱅크(FPB)는 지난 7월 현지 금융당국의 허락을 얻어 고위험·고수익 성향의 고객들을 위해 비트코인 거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고객의 비트코인 구매나 판매·보관을 대신해주고 거래액의 3%를 수수료로 받는 구조다. 아서 베일로얀 FPB 글로벌 상품·서비스 책임이사는 “액수를 정확히 공개할 수 없지만 서비스를 시작한 후 한 달 동안 얻은 수수료 수익이 이 서비스를 준비하는 데 들어간 리서치 비용의 100배 정도 된다”고 귀띔했다. 비트코인은 여전히 변동성이 큰 투자 대상이지만 신뢰할 수 있는 기존 금융기관이 서비스에 나서자 순식간에 슈퍼 리치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베일로얀 이사는 “현재는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가 진보적인 이슈지만 나중에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부동산 등의 자산이 거래되는 혁신이 있을 것”이라며 “블록체인으로 인한 금융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금융권 출신이자 현재 블록체인 기반 가상화폐 펀드 거래 플랫폼을 만드는 스위스 멜론포트의 모나 엘 이사 대표는 “40년 전 마이클 밀컨이 처음 정크본드에 투자했을 때 지금과 똑같이 ‘모두 사기’라는 반응이었고 심지어 (뮤추얼펀드사 뱅가드 설립자) 존 보글이 20년 전 처음 상장지수펀드(ETF)를 만들었을 때도 ‘믿을 수 없는 펀드’라고 했다”며 “성공 스토리가 다 쓰이고 나서야 확신을 하면 그때는 이미 늦었다”고 지적했다. 블록체인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기존 산업의 틀을 바꿀 획기적인 시스템임에는 분명하고 기술확보와 생태계 구축에 낙오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추크=김흥록기자 ro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