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시바가 이달 말 협상 마무리를 목표로 미국 웨스턴디지털(WD)과 도시바메모리 매각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기존 우선협상대상자로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연합의 도시바메모리 인수는 사실상 어려워진 게 아니냐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23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도시바가 이달 말 협상 결론을 낸다는 목표로 WD와 매각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WD는 도시바와 합의하에 반도체 메모리 사업의 자산 실사를 진행 중이며 다음주 중 자산 평가를 포함한 실사 작업을 마치고 이달 안에 이사회 승인을 거쳐 최종 계약을 맺을 계획이다.
양사 간 합의가 성사되면 현재 한미일 연합에 속한 일본 산업혁신기구와 일본정책투자은행 등이 WD연합으로 진영을 갈아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도시바메모리 내에 자국 지분을 원하는 일본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컨소시엄 내 WD의 예상 지분율은 20% 내외이며 미국 투자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등도 주요 투자자로 포함됐다. 기존 한미일 연합에서 베인캐피탈과 SK하이닉스가 빠지고 WD와 KKR가 포함되는 구도다.
양측의 협의는 상당 부분 진척된 것으로 관측된다. WD 측 협상담당 임원이 이번 주 일본에 도착해 협상을 시작한 데 이어 스티븐 밀리건 WD 최고경영자(CEO)도 이달 중 일본을 방문한다. 도시바 경영진은 이미 이달 중순께 은행단에 WD연합과의 매각 교섭을 우선할 것이라는 뜻을 전했다. 도시바는 매각 조건으로 기술자 등 직원의 고용 유지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WD는 도시바메모리 인수합의가 성사될 경우 국제중재재판소에 제기한 매각중지 주장을 철회할 방침이다.
이 같은 인수 경쟁 구도 급변에 대해 SK하이닉스는 “결정된 바 없고 달라진 게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연합이 우선협상대상자로 발표됐을 때도 일본 언론 등에서는 여전히 도시바가 WD와도 협상을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는 설명이다. 특히 WD와 도시바 간의 협상 내용은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고 한미일 연합과 도시바 간의 협상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지난달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기자들과 만나 “(포기를)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인수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의 인수 실패 가능성을 높게 보는 분위기다. 한미일 연합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바 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고 한미일 연합의 핵심이던 산업혁신기구가 WD연합으로 빠져나갈 공산이 커졌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민관펀드인 산업혁신기구는 이번 도시바메모리 인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파트너로 꼽힌다.
일각에서는 도시바와 WD 간 타협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 경우 매각 교섭이 다시 교착상태에 빠질 여지도 있다./김희원·신희철기자 heew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