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MBC 드라마 ‘마지막 승부’로 이름을 알린 배우 장동건(사진). 드라마가 방송되자마자 조각을 빚은 듯한 비현실적으로 잘생긴 그의 외모가 화제가 됐고, 그는 단숨에 톱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1992년 MBC 21기 공채 탤런트에 합격한 이후 브라운관에 등장하자마자 신드롬을 일으킨 장동건은 이제 연기 25년 차의 중견 배우가 됐다. 20년이 넘는 연기 경력에도 필모그래피에 올린 작품 수는 비슷한 경력의 동료 배우들에 비해 적은 편이다. 매 작품마다 심사숙고한 까닭인데 그런 그가 ‘우는 남자’에 이어 3년 만에 스크린 복귀작으로 택한 영화는 ‘브이아이피’다. ‘부당거래’ 각본, ‘신세계’ 연출을 맡았던 박훈정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작품은 기획 귀순을 소재로 한 누아르 장르다. 이 작품에서 미국 CIA로부터 한국에 귀순한 북한 고위층 아들이자 연쇄살인범 용의자 김광일(이종석 분)을 넘겨 받아 그를 보호하는 국정원 요원 박재혁을 연기한 그를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의 얼굴에서 ‘청춘’은 사라졌지만 기품있는 중년의 미(美)와 여유로움이 그 자리를 차지해 ‘나이 듦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증명해 내고 있었다.
그는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많은데, 북한의 고위층 아들이 기획귀순을 하고 그가 또 연쇄살인범 혐의를 받는 설정이 흥미로웠다”며 출연 결정 이유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 흥미진진한 영화에서 그는 연쇄살인범들이나 이들을 쫓는 입체적인 캐릭터인 형사도 아닌 가장 밋밋할 수 있는 박재혁 역을 연기했다. 그동안 잘생긴 외모와 달리 집단에서 이탈하고 방황하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던 그인 까닭에 이번 연기는 ‘파격적’이지 않아 ‘파격적’이다. “20대나 30대에는 평범한 인물보다는 감정 기복이 있는 인물이 연기자 입장에서는 보여줄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해서 주로 선택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저의 그런 생각에도 변화가 왔고, 이번 작업에서는 빼는 작업을 많이 했어요. 장면마다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깊이 생각하면 영화에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았어요.” 실제로 장동건은 그동안 보여줬던 모습과는 달리 연쇄살인범, 형사(김명민 분), 귀순자(박희순 분) 등 강한 캐릭터들의 주변에 머무는 가운데 심리적 격변을 겪는 ‘정중동의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장동건은 배우로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동시에 ‘세기의 미남’으로 꼽히는 등 외모에 대한 찬사는 늘 그를 수식하는 ‘숙어’처럼 따라 붙었다. 그 누구보다 인기의 명암에 대해 절감했을 터. “한때는 다들 저만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런 게 좀 빗겨가니 서운하기도 하더라고요. 박중훈 선배가 진행하는 ‘라디오 스타’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갔는데 게시판 댓글을 보니 ‘마지막 승부’부터 ‘우는 남자’까지 저를 기억하시는 분들의 연령대가 다양하더라고요.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다양한 연령층에 영향을 주면서 시대에 따라 저에 대한 이미지도 다르게 볼 수 있구나. ‘분발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비현실적으로 잘생긴 외모 탓에 그는 매 작품마다 연기보다 외모가 더 주목을 받았다. 배우로서 이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냐고 묻자 “그렇게 스트레스 받고 살지 않았다”는 여유로운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한때는 외모를 극복해야 하는 것을 숙명처럼 여기고 살았고, 일부러 센 역할을 고르기도 했다”며 “그런데 저의 외모를 극복해서 연기력을 인정받기보다는 그동안의 활동이 한계를 인정하는 작업이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다 보니 조바심도 줄었고,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또 “못생긴 배우에게도 그런 외모가 한계이지 않나. 외모가 주는 역할의 한계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있는 것 같다”며 “요즘은 사실 잘 생겼다는 말도 잘 못 듣는다”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배우 고소영과는 영화 ‘연풍연가’로 인연을 맺어 결혼까지 하게 됐다. 둘의 결혼은 ‘세기의 미남 미녀 배우의 결혼’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2010년 결혼한 이 둘 사이에는 아들과 딸이 있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아들을 등교시켜주는 모습이 소셜네트워트서비스(SNS)를 통해 전해지며 화제가 됐다. 톱 스타지만 가족에게는 한없이 평범한 아빠였던 것. “가족이랑 보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해요. 최근에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제 딸이 저를 쏙 빼닮았고, 아들은 소영 씨를 많이 닮았어요. 저를 닮은 딸 사진을 찍어주는 게 요즘 낙이에요.”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제공=SM C&C(048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