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음정우의 미술경매]외면받던 일제강점기 작품 고미술시장 주류로 '성큼'

왜색 등 이유로 찬밥신세였으나 최근 수요 늘며 재조명 잇달아

윤동주 시인 '하늘과...' 초판본, 일본인 사진첩 등 고가에 낙찰

시미즈 도운( 淸水東雲)의 1911년작 ‘최제우·최시형 참형도(慘刑圖)’ 중 외부에서 목 베는 장면. 57.6x69.5cm. /사진제공=서울옥션시미즈 도운( 淸水東雲)의 1911년작 ‘최제우·최시형 참형도(慘刑圖)’ 중 외부에서 목 베는 장면. 57.6x69.5cm. /사진제공=서울옥션


100년. 우리나라 고미술 시장의 인기 품목들은 최근까지 이 100년의 경계에 머물러 있었다. 적어도 그 이상의 세월을 머금어야 골동이란 수식어를 붙여주고 고미술로 인정하다보니 컬렉터들도 그쪽에 눈길을 뒀다. 그렇다고 고미술에 대한 정의가 100년으로 규정돼 있는 것은 아니다. 20년 전 국내 미술품 경매가 본격화 될 때도 100년이 기준이었으니 기간은 이제 120여년으로 늘어났다.

조선시대 이후의 작품은 ‘고미술’이란 타이틀을 달지 않는다. 구한말을 벗어나 일제 강점기에 들어 제작된 작품에는 별도의 수식어가 있는데 ‘근대 동양화’ 또는 ‘근대기 자료’라는 이름으로 삼국, 고려, 조선시대의 다음 세대 품목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나라가 망해 전통이 흩어진 그 시기의 예술품을 상대적으로 저평가한다. 볼수록 가슴 아파 외면하는 흉터처럼 그 시기의 예술 흔적들은 전통성을 잃었다는 이유로, 왜색을 띤다는 이유로 찬밥 취급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00년대 들어서면서 많이 가라앉았다 해도 반세기에 걸쳐 국가적 반일정서와 왜색문화 비판이 워낙 강했기에 일제 강점기에 제작된 예술품들은 고개 숙인 죄인이자 천덕꾸러기 일 수밖에 없었다.

최근 경매시장에는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난다. 출품조차 되지 않던 일제 강점기의 흔적이 수요가 하나둘 늘면서 당시의 예술품과 자료들을 모아 기획하고 조명하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한 경매에서는 일본인들이 대한제국 왕실유물을 조사하고 일본어로 출간한 ‘이왕가박물관소장집’이 150만원에 경매에 올라 4배가 넘는 낙찰가를 기록하는가 하면, 총독부의 지원 아래 국보급 문화재를 일본으로 유출한 ‘조선공예전람회’ 도록이 역시 엄청난 경합 끝에 주인을 찾아갔다. 뿐만 아니라 시인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은 1,500만원에 경매에 올라 순식간에 5,000만원대의 서적 반열에 올랐고, 일본인들이 그린 강점기 당시의 한국 풍경과 사진첩 등이 이례적인 낙찰기록을 내기도 했다. 그전엔 국내에서 관심도 없었거나 별거 아닌 기록물, 출판물, 예술품으로 치부되던 품목들이다.

시미즈 도운( 淸水東雲)의 1911년작 ‘최제우·최시형 참형도(慘刑圖)’ 중 내부에서 목 매는 장면. 57.6 x 70cm. /사진제공=서울옥션시미즈 도운( 淸水東雲)의 1911년작 ‘최제우·최시형 참형도(慘刑圖)’ 중 내부에서 목 매는 장면. 57.6 x 70cm. /사진제공=서울옥션


고미술 시장의 등락과 확장은 서양미술과 한국 근현대 미술에 비해 크거나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굳이 외부요인으로 움직인다면 청신호로 작용할 만한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거나 경제 상황이 크게 변화할 때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근대 예술품의 시장 확대는 개인적으로 우리 국민들이 일제강점기를 바라보는 태도변화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곰보가 피고 흉터가 앉아도 내 얼굴이고 아무리 부끄럽고 슬퍼도 우리의 역사라고나 할까. 지금 시장은 일본을 증오하고 일본의 잔재라며 무조건 외면하던 때를 지나 우리 역사의 한 조각으로 마주하고 예술의 맥락에서 서서히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치열하게 전통을 잇고자 노력한, 새로운 예술품을 창조하려던 선조들의 흔적을 재조명하고, 일본인들이 남긴 마지막 조선의 흔적들은 또 한편으로 관찰해 가는 이성적인 시선들이 이렇듯 하나둘 고미술 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여담이지만 최근 한국의 시장 변화에 일본시장 역시 기민해진 모습이다. 사실 일제의 수탈뿐 아니라 해방 이후 벌어진 한국전쟁으로 문화재급 예술품과 강점기 당시의 유물들은 일본이 많이 보유하고 있는 상황, 한국고객을 상대하는 일본 상인들은 한국의 시장 상황에 예민하고 대처가 빠르다. 이에 최근까지 거들떠보지도 않던 근대자료의 수요가 늘어나자 현지 매물을 서서히 줄이고 가격은 상향시키는 움직임이 있다. 물론 모든 품목에 적용된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기존 가치를 상회하는 재평가가 이뤄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근대에 초점을 맞춘 고미술 컬렉터라면 관심을 가져볼 시기가 온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엽서집니다. /도로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 추억(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얼마 전 경매된 윤동주 시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중 ‘자화상’의 일부다. 가여워 그립고 밉지만 우리의 일부인 일제 강점기 흔적들, 지금껏 고개 숙였던 20세기 예술혼이 시장의 주류로 바짝 다가서고 있다.

/서울옥션(063170) 경매사

조상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